사는 이야기

안면 신경마비 37일째... 침 4회차

polplaza 2023. 6. 2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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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 신경마비 37일째다.

침침한 시야와 부자연스러운 입은 보는 것과 먹는 것을 불편하게 한다. 주변 사람들은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외형적인 모습과 달리 왼쪽 눈과 입의 기능은 정상이 아니다. 왼쪽 눈의 아래 눈두덩이는 찡그리면 근육이 거의 70~80% 정도 움직인다. 주름살은 오른쪽 눈에 비해 4분의 1 정도 생기는 것 같다. 신경이 돌아오고 있지만 아주 느린 셈이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오후에 침을 맞으러 갔다. 침 맞는 시간 30여분을 포함해 왕복 3시간 정도 걸린다. 약간 회의도 있지만, 자신감 있어 보이는 침술사의 치료술을 두어 번 더 맞아보기로 했다. 자연 회복에 의한 개선인지, 침의 효과에 의한 개선인지는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회복 속도가 아주 완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술 아저씨는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이왕 이 분에게 치료를 맡긴 동안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침은 언제 배웠는지, 누구한테 배웠는지 등등....
침술 아저씨는 17세 때 실명했다고 했다. 마당에서 갑자기 눈이 침침해져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에 신문을 보는데 큰 활자체만 보였다고 했다. 공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영등포 김안과에 갔는데, 오전 오후 내내 검사만 하다가 '바이러스 감염' 진단들 받았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개선이 안돼 국립의료원으로 갔는데 3일 동안 검사한 후 바이러스 감염 진단을 내렸다고 했다. 김안과에서 그런 진단을 받았다고 했더니 왜 일찍 말하지 않았냐고 질책했다고 했다. 이렇게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됐다고 했다. 

고향에 내려가 라디오를 듣다가 서울에 맹인들을 위한 직업학교가 있다는 정보를 알았다고 했다.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학교 전화번호를 알아게 되어 입학 문의를 하고, 필요한 입학 서류를 제출했다고 했다. 이 학교에서 침술과 지압 등을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침술을 배웠다고 했다. 약 40년간 침을 놓았다고 했다.

침술사 아저씨는 자신도 안면 마비가 와서 친구한테가서 한 달간 얼굴에 침을 맞고 나은 적이 있다고 했다. "친구는 내 얼굴에 침을 놓는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어 친구의 방식대로 얼굴에 침을 맞았다"고 했다. "친구도 맹인이시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아마도 맹인학교에서 같이 배운 분이 아닌가 싶다. 침술 아저씨는 안면 마비를 경험한 이후에는 외부 왕진을 일체 중단하고 예약 손님만 받고 있다고 했다. 과로로 인하여 신경마비가 왔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몸을 아끼기로 했다는 것이다.


(침 놓은 왼쪽 다리)


침술 아저씨는 오늘도 나의 왼쪽 정강이와 발에 침을 놓았다. 이 분의 방식이다. 지난 번과는 달리 손등에는 침을 놓지 않았다. 이 아저씨에게 "매일 체한 듯한데 이상하다"면서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물어봤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진맥을 했다. "체한 것이 맞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밥을 잡 씹지 않고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내가 "식사를 한지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몇시간 지나서 생긴다"고 하자 "위장에서 소화를 시킨 후 아래로 내려보내야 하는데 찌꺼기가 위장에 남아있기 때문"이라며 "위장의 운동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 먹어라고 했다. 한의원에서 만든 소화제 처방을 제안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냐?"고 물어보려다 그만뒀다.

눈 부위의 조임 현상에 대해서는 "한번에 다 낫는 것이지 일부만 낫는 것은 아니다"면서 "휘파람을 불 수 있으면 다 나은 것"이라고 했다. 

40분쯤 흐른 후 침을 모두 뺐다. 그리고 목 주변과 어깨 쪽, 등 쪽으로 지압을 해 주었다. 근육이 뭉쳐 있다면서 이걸 풀어줘야 한다고 했다. 침과 지압, 마사지는 혈을 통하게 한다는 점에서 원리가 같다고 했다. 지난번에는 많이 아팠는데 이날은 많이 아프지 않았다. "지난번에 힘을 세게 가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똑 같이 힘을 준다"면서 "뭉친 것이 많이 풀려서 덜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은 또 왼쪽 입 안쪽으로 모양이 다른 침을 여러번 놓았다. "따닥!" 하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침을 뱉으니 빨간 피가 나왔다. 침을 놓은 부위에서 피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침 후유증 같은 통증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마지막으로 왼손 중지의 첫째, 둘째 마디와 손바닥에 의료용 밴드를 잘라 붙여 주었다. 기술을 배우고 있는데 눈이 침침해져서 포기할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나는 몸을 상하지 않도록 기술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아저씨는 포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손가락에 의료용 밴드를 붙여주어 그대로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것은 아무래도 미씸쩍었다. 최대한 오래 붙이고 있으라고 했다. 스스로 해도 된다고 했지만,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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