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우짜' 스마일 우체국(Smile Post)에서 특별한 에스프레소 한잔

polplaza 2024. 5. 1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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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웃음과 위로를 전하는 캐릭터 '우짜'를 개발한  해라호 작가가 운영하는 'Smile Post(스마일 우체국)'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스마일 우체국은 경기도 의왕시 삼동에 있다. 전철 의왕역에서 내려 도깨비시장을 둘러보며 5분 정도 걸으면 외관이 특별한 2층 건물을 찾을 수 있다.

세탁소가 있는 건물 한쪽에 그림같은 파란색을 칠한 2층에 '웃음을 배달합니다' '스마일 우체국'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파란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있는 차양이 달린 1층에는 '우짜' 캐릭터와 함께 'Smile Post'와 '우짜'의 영문 표기인 'WOOZZA'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면은 노랑색으로 칠해져 있다. 건물 외양의 디자인과 그림, 문구, 색깔 배합, 페인트칠 등은 해라호 작가의 아이디어와 창작으로 이뤄진 것이다. 무려 6개월 이상 걸렸다. 

(해라호 작가가 운영하는 '스마일우체국' 전경)
(가게 셔터를 올리면 나타나는 '스마일 우체국' 입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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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짜' 캐릭터와 우체통이 비치된 스마일 우체국 내부)

해라호 작가는 "가게를 계약하고 6개월 이상 페인트칠만 하고 있으니 동네 주민들이 지나가다 가게 입구에 와서 뭐 하는 곳인지 물어보기도 했다"고 회상하며 "스마일 우체국에서 부모님이나 병상에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과 위로, 웃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는 손님들에게는 커피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싶다"고 했다. 가게 간판을 '스마일 우체국'이라고 명명한 이유였다.

그는 여유가 되면 서해와 남해, 동해의 외딴 곳에 스마일 우체국을 열고 싶다고 했다.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외롭고 지치고 힘든 누군가에게 웃음을 전하는 편지를 쓰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다. 동해든 남해든 서해든 스마일 우체국이 생기면 초대 우체국장을 필자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요즘 표현으로 'ㅋㅋㅋ' 가 맞을 듯한데,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자신이 개발한 커피와 특별한 음료를 파는 가게 문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사태를 맞았다. 코로나 전에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7~8평 정도인 가게의 임대료가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손님이 끊겨 가게문을 오랫동안 닫아야 했다. 소상공인 대출로 그럭저럭 연명할 수 있었다.

(안내하는 해라호 작가)


가게 수입이 없다보니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하는 부담이 점차 커졌다. 스마일 우체국을 만들 때의 당찼던 의욕도 줄어들었다. 암흑같은 절망이 엄습해왔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였다. 

2022년 9월 어느날 밤, 혼돈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그는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보름달 같은 둥근 달이 떠 있었다. 외롭게 홀로 밤을 밝히는 달이 가슴에 와 닿았다. 핸드폰을 꺼내 달을 찍었다. 그는 가게에 돌아와 종이 위에 볼펜으로 검은색을 마구 칠하기 시작했다. 칠흑같은 밤 하늘을 그렸다. 볼펜 자국이 난 색칠이 조잡해 보였다. 다음날 문방구에 가서 아예 검은색 종이를 사왔다. 그 위에 노란색 페인트로 달을 그렸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리고 몇달 후,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이 그림이 갑자기 생각났다.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은색 종이를 구해서 노란색 달을 그리면 될텐데, 그 때 그린 그림에 집착했다.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있듯이 마침내 생각이 났다. 가게 짐을 옮기면서 그 그림을 스케치북과 함께 승용차 트렁크에 넣어두었던 것이다.

그가 그림을 애타게 찾은 이유가 있었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우짜' 캐릭티 피규어를 그 그림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우짜 캐릭터 피규어와 달 그림)


해라호 작가는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그 속에 든 검은색 바탕의 달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펼쳐 보였다. 앞날이 캄캄하면서 숨이 막히던 2022년 9월 어느날, 밖에서 달을 보고 사진을 찍어와서 검은색 종이에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달은 스마일 우체국 인테리어 공사 때 칠하고 남은 페인트로 그렸다고 했다. 그리고 목줄이 달린 '우짜' 캐릭터 피규어를 들고 왔다. 지난해 가방에 넣어 필자를 만나러 오다가 이동 중에 왼쪽 다리가 부러진 우짜 피규어였다.

그는 우짜 캐릭터를 애지중지 다루면서 달 그림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저는 이걸 보고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라며 나를 바라봤다. "우리의 삶은 다리가 부러지는 아픔과 절망, 좌절을 겪으면서 인생의 목표인 달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우짜를 보십시오.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웃고 있지 않습니까?"

달 그림과 우짜의 조합은 그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만든 우짜 캐릭터가 무언의 가르침과 의욕을 일깨워준 것이다. 해라호 작가는 다시 의욕을 불태우기로 했다. 희망과 용기를 갖고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다. 가게 메뉴는 차별화가 어려운 커피 대신 에스프레소로 바꾸었다. 스마일 우체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븍별한 에스프레소를 개발해냈다. '루비엥 에스프레소'가 그것이다.

(아이러브캐릭터 잡지에 실린 해라호 작가 기사)


'루비엥(LUBIĘ)'은 '나는 좋아한다'는 뜻의 폴란드어이다. 과거 폴란드국립영화학교에 다니면서 폴란드어와 친해졌기 때문이다. 스마일우체국에서 파는 '루비엥 에스프레소'를 풀이하면, '나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한다'는 뜻이 된다.

해라호 작가는 주방에 가서 직접 '루비엥 에스프레소' 한잔을 뽑아왔다. 흰색의 도자기 접시 위에 초코가루가 뿌려진 에스프레소를 담은 아담한 흰색 사기그릇 잔이 품격을 느끼게 했다. 옆에 작은 티스푼도 하나 놓여 있었다. 스푼으로 살짝 저어서 마시면 된다고 했다. 이 맛은 어떨까? 

처음 느껴 보는 이 에스프레소의 맛은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맛이었다. 

해라호 작가는 "우리 인생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쓸 때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그러한 인생의 맛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것이 '루비엥 에스프레소'입니다. 하하~"하고 웃었다.

(해라호 작가가 만든 '루비엥 에스프레소')


그는 에스프레소를 담은 잔과 접시는 세계적인 에스프레소잔 브랜드인 안캅에서 만든 것을 수입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쟁반 뒷면에 'MADE IN ITALY'라는 영문 표기를 볼 수 있었다. 스푼은 영국 귀족들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제품이라고 했다. 좋은 원두를 사용해서 에스프레소를 뽑지만 잔과 접시, 스푼도 많이 신경썼다고 강조했다. 또 잔과 접시를 담아온 큰 쟁반에는 'Lubię ESPESSO(루비엥 에스프레소)'라는 원어와 함께 우리말 '맛있다'의 발음대로 쓴 '마시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루비엥 에스프레소라는 창작 브랜드와 맛에 대한 해라호 작가의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메뉴는 에스프레소 5종류만 있으며, 가격은 한 잔에 3,000원이라고 했다. 어떤 손님은 "너무 싸게 파는 것 아니냐"며 1천원을 더 주고 가기도 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인근의 경기도 의왕에서 '루비엥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기회였다. 루비엥 에스프레소 한잔을 음미하면서, 이태리와 영국, 그리고 폴란드까지 상상해보았다. 품격있는 시간이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전하기 위해 세워진 스마일 우체국이 루비엥 에스프레소와 함께 세계적인 우체국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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