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서경석 목사, "한 때 테러리스트 꿈꾼 적 있다"

polplaza 2024. 6. 19. 22:54
반응형

청년 시절 운동권으로 감옥을 3차례 다녀온 서경석 목사는 왜 좌파 진보 운동권 노선을 버린 것일까.

서 목사는 자신이 쓴 <꿈꾸는 자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책에서 "사실 나는 한 때 테러리스트를 꿈꾼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에서 "내가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이고 혁명가로 살겠다고 결심한 뒤 내게 냉혹하고 단호한 또 다른 얼굴이 생겼다"면서 "혁명적 의지로 완전히 무장된 삶을 살려는 그런 노력이 내 청년 시절 모습이었다"고 했다. 본래 자신의 얼굴은 "순진하고 천진한 얼굴"이었는데, 테러리스트를 꿈꾸면서 "냉혹하고 단호한 얼굴"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2개의 얼굴을 가진 시기를 1970년대로 꼽았다.

(서경석 목사/ 사진: 서경석 SNS 캡처)

300x250


그는 70년대 기독교운동을 하던 후배에 대해 후회스런 일화를 고백했다. 그 후배가 찾아와서 농민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여 흔쾌히 전라남도 한 농가에 머슴으로 일하게 해주었는데 얼마 못견디고 야반도주하여 서울로 상경해버렸다는 것이다. 당시 재야운동, 민중운동 풍토에서 운동의 현장을 벗어나 도망친다는 것은 매우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라 야단을 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배가 그날 밤 머리가 이상해져서 조울증에 걸려 정신병원 치료를 받는 처지가 됐다고 했다. '후배가 겪었을 마음 고생이 얼마나 컸을까. 후배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서 위로했다면 그렇게 상태가 나빠지지 않았을텐데'라는 후회가 두고두고 남았다고 했다. 물론, 서 목사의 야단 때문에 후배가 그런 병에 걸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공교롭게 그런 상황이 되다보니 서 목사는 후배를 생각할 때마다 두고두고 후회와 아픔을 느낀다고 했다. 병이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결혼을 하고 취직도 하였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청년시절 비인간적 부분 뼈저린 반성과 회개.. 인간을 수단화하는 운동 하지 않겠다"

서 목사는 "돌이켜보면 청년 시절 나는 사회운동을 한다면서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일을 했던 적이 많았다"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후배를 감옥에 가도록 지시하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줄 알면서도 냉혹한 비판을 가해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고 반성했다. "때문에 나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신앙으로 되돌아 오면서 지난 날 부족한 부분, 비인간적인 부분에 대해 뼈저린 반성과 회개의 시간을 가졌다"면서 "앞으로 절대로 인간을 수단화하는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간 중심의 사회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미국에서 돌아온 그는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권 집회에 참석하고 대학가를 돌면서 운동권에 재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집회에 참석할수록 '어, 이게 아닌데....' 하고 회의감에 쌓였다. '미제국주의자의 가슴에 비수를 꼽자' '미제곡주의자의 각을 뜨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설교하는 목사가 '사람의 각을 뜨는 운동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원초적 모순에 빠진 것이다. 1988년 운동권 상황에서 서 목사가 생각했던 사회운동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 그의 뇌리에 떠오른 화두는 로마서 12장 21절에 나오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성경 구절이었다.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을까?'
'이길 수 없어. 악과 싸워 이길려면 필요악이 필요해.'
'너는 진실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목사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반문과 반문을 거듭하면서 목사 신분인 자신의 정체성 문제까지 의문을 품게 됐다.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그는 88년을 보냈다.

반응형

그리고 1989년 초,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필요악에 기초해서, 증오에 기초해서 운동을 하는 일은 나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결심했다. '이제부터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을 해야겠다. 목표뿐만 아니라 방법까지도 선하게 해야겠다'고 '선(善)'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했다. 계기는 88년부터 원장서리로 일해온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에서 벌어진 실무자들의 스트라이크였다. 불과 며칠전 까지만 해도 잘 따르던 사람이 갑자기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언행을 보고 느끼면서, '저런 식의 운동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반면교사의 교훈을 얻었던 셈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 경실련의 중요한 원칙 세워

그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을 사실상 국내 최초로 창립한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중요 원칙으로 내세웠다. 따라서 경실련 발기선언문에 '우리가 힘을 모으려는 세력은 소외되고 억압된 민중만이 아니다. 선한 뜻을 지닌 가진 자도 이 운동의 중요한 주체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그가 기업인이든 중산층이든 할 것 없이 이 운동의 중요한 구성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후, 서 목사의 삶이 과거와 다르게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사람들을 만나거나 교류하는 범위가 광범위하게 넓어졌다.

서 목사는 경실련을 창립하기 전까지는 사람의 출신 성분을 보고 사귀었다. 예컨대 가난한 노동자, 농민의 아들, 혹은 집안에 과거 인민군에 부역한 경험이 있는 집안의 아들, 좌익집안의 아들 등 대체로 이런 사람들과 교분을 텄다. 출신 지역으로 따지면 내게는 호남 출신이 가장 많았다. 그는 "내가 주로 이런 사람들을 골라서 사귄 이유는 우선 이 사람들은 조직화를 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며 "그당시 내 관심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많이 조직화해서 혁명을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했다.

경실련을 출범시킨 후, 서 목사는 이전의 혁명 의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오히려 부자가 경제정의운동에 동참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고,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우리 이 운동을 함께 합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했다.

실제로 놀라운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서 목사는 청년 시절에 새문안교회의 아주 부자인 장로에 대해 기업주라는 이유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속으로 경멸하고 적대시하곤 했는데 경실련을 시작할 무렵 그 장로가 경실련 활동에 보태쓰라며 상당한 재정적 도움을 줬다고 했다. "내가 젊은 시절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자본가라고 경멸했던 분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거꾸로 그 일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라며 "나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옳은 사람이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구나. 내가 젊은 시절 계급이론에 빠져 부자를 무조건 나쁘게 생각했던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라고.말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옳은 사람"
"가진 자와 못가진 자 계급적 입장에서 선악 구분은 잘못"


서 목사는 "(경실련) 시민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철저하게 계급적 입장을 버리게 되었다"며 "이런 나의 변회의 출발은 사회주의혁명이 불가능하다는 나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을 해나가는 동안 나의 인간이해가 근복적으로 바뀐 것"이라고 자평했다.

종합하면, 1989년 국내 최초의 명실상부한 시민단체 경실련 창립을 주도한 서경석 목사는 70년대 운동권으로 '혁명'을 꿈꾸었던 진보 좌파 인물이었다. 80년대 미국 유학 중 '인간 중심의 사회운동'을 결심하고 88년 귀국후 자신이 몸담던 운동권과 결별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설교하는 목사로서 운동권의 과격한 구호와 비인간성, 폭력성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경실련 출범을 전후하여 '선(善)으로 악(惡)을 이기는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고, 사회주의 혁명과 계급이론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면 옳은 사람이지, 가진 자와 못가진 자로 계급적 입장에서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시민운동의 대원칙을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으로 삼고, 여기에 동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환영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한편 서경석 목사는 1948년생으로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 공대 기계학과를 졸업한 개신교 목사 겸 시민운동가이다.. 진보 진영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에서는 우파로 돌아선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는 조파도 우파도 아니다는 입장이다. '선한 의지'를 가지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회운동'을 평생 해나갈 뿐이라는 것이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은 적이 있으며, 1975년 민청학련사건으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980년 석방되었다. 1982년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로 유학을 떠나 1988년 귀국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창립하여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집회에 맞서 맞불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우파로 전향한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으나, 서 목사 자신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는 입장이다. 목회자로서, 시민운동가로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