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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장기표 선생의 추모 글

polplaza 2022. 12. 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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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2년 12월 12일은 고 조영래 변호사의 32주기 되는 날이었다. 그의 절친이었던 장기표 선생은 이날 "오늘 같이 험난한 세상에 조영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하지만 김병곤, 이옥순, 제정구, 김근태 등 능력이 탁원한 사람들은 ‘재인박명’이란 말대로 일찍 죽는가 싶은 생각도 들어 더욱더 안타깝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장 선생은 "얼마 전 조영래 변호사 묘소를 다녀오기도 했다"면서 "(조영래 변호사의) 장례 때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조사로 추도의 뜻을 피력한다"고 당시 썼던 추도사를 SNS에 올렸다. 장 선생이 쓴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추도사를 아래에 옮겨 싣는다.

(장기표 선생(왼쪽)과 고 조영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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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래 -

민주화와 인간해방을 위한 삶과 투쟁

                                - 조영래 선생의 영전에 

조형!
결국 이런 모습으로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려 합니까? 도대체 내가 조형 영전에 조사를 바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아니 진짜 이 나라를 책임지고 일해야 할 민족의 큰 일꾼인 조형이 이 혼돈의 세상을 그대로 둔 채 떠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더욱이 조형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마음 아파하면서 쾌유를 빌었는데 이렇게 홀연히 떠나다니 말이 됩니까?

그러나 조형을 원망하기에 앞서 우리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어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자기 몸이라고는 털끝만큼도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인간해방의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일에만 몰두하는 조형을 보면서 존경과 경탄만 했을 뿐,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하도록 강권하지 못한 우리가 밉도록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조형! 너무나 탁월한 조형이었고, 그리고 나에게는 언제나 스승이었기에 이 통한의 아픔을 겪고서도 당신이 이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가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 없군요. 더욱이 죽음이야말로 삶의 총화이겠기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조형을 되돌아보는 글을 씀에 있어 조형이 너무나 자기를 드러내는 것을 싫어해서 이 글을 쓰는 것조차 주저됩니다. 심지어 ‘절대 겸손’을 이루려고 끝내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당신 앞에 지난 일들을 널어놓는 것이 당신을 번거롭게 하는 것 같으나, 당신의 위대한 삶과 투쟁, 그리고 그 기초가 된 당신의 뜨거운 사랑과 의지를 되새겨보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삼선개헌 반대투쟁, 그리고 유신독재 철폐투쟁에서 가히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것을 특별히 잊을 수 없군요. 자기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 당신의 독특한 성품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일은 적으나 역사적 전환점이 될 대사건에서는 반드시 당신의 탁월한 능력이 발휘되었지요. 사실 나는 당신이 주도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보람과 기쁨을 누렸으니까요. 그리고 이 땅에 당신과 같은 뛰어난 활동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러웠지요.

당신이 어떠한 자세로 민주화운동을 해왔는지를 드러내는 일 한 가지를 되새겨봅니다. 전태일 동지의 분신자결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신은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공부를 중단하고 전태일 부활투쟁에 전심전력을 기울였으니, 이것이야말로 당신의 진면목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전태일을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민청학련사건 관계로 피신생활을 하면서도 한시도 민주화투쟁을 중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기간에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불후의 대작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였습니다. 이 책은 결코 단순한 글재주의 산물이 아니라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불굴의 투혼의 산물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일 같아서 새삼스럽게 들추어내고 싶지도 않으나 그것이 5공독재를 끝장내기 위한 민중투쟁에 중요한 촉매제가 된 것을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조형! 너무도 아까운 조영래 동지여! 쓰잘데 없는 너스레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당신의 죽음을 맞아 비통한 것을 차치하고라도 언제나 당신에게 의지해왔던 나로서는 앞이 캄캄하지만 이 속에서도 기쁨과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이 있어 새삼 당신의 위대성에 감탄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맞아 비단 민주세력만이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슬픔의 행렬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서 당신은 과연 큰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니 슬픔 가운데서나마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한 일로 생각될 수도 있겠으나 조영래 당신이야말로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과연 이 민족의 통일과 화합을 이룰 큰 인물임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고, 그래서 당신을 잃은 우리의 슬픔은 더욱 큽니다.

사랑하는 동지여!
비록 한줌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통해 ‘절대겸손’을 실천한 당신이라 하더라도 어찌 회한과 아쉬움이 없겠습니까? 당신과 더불어 고난을 함께 해온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어찌 송구함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민주와 통일과 해방으로 되살아날 당신과 함께 모든 아픔을 이기고서 힘차게 살아갈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부디 편히 쉬소서! 우리와 함께 하소서!

1990년 12월 14일

장 기 표

2021.03.09 - [사이버정치마당/정치이야기] -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조영래)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조영래)

[편집자 주] 이 글은 고 조영래(1947.3.26~1990.12.12) 변호사가 1988년 몇 차례에 걸친 시국사범 석방에도 불구하고 장기표가 석방 대상에서 제외된데 대해 은유적으로 장기표의 죄상(?)을 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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