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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 우리들의 장기표 씨(함세웅)

polplaza 2021. 3. 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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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함세웅 신부가 1988년 장기표의 옥중서한 '새벽노래' 출간을 기념하여 쓴 추천사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국사범들에 대한 석방이 몇차례 이뤄졌으나, 그 때마다 석방 대상에서 제외된 장기표에 대해 여러가지 소회를 적었다.

(함세웅 신부)

1987년의 5~6월에는, 이 나라 민중이 분출하는 민주화의 열기가 이땅을 가득 채웠다. 지금은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한 독재자의 호헌조치에 대해 '이럴 수는 없다'는 지식인, 문화인, 전문인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것이다. 그 물결은 더욱 나아가,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을 왜곡·축소·조작한 공권력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군사독재정권의 명운은 일각일각 민중의 포위망 속에 압축되어 갔다. 이른바 6.29 선언이라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독재권력이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카드요, 또한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로 이때부터 사태는 잘못 흐르고 있었다.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시작된 '구속자 석방'은 민중의 입장과 그 극명한 논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엊그제까지만 해도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용공조작한, 바로 그 공안당국의 손과 논리에 따라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 후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졌고, 그 결과 '제6공화국'의 출범에 즈음하여 또 한바탕 외형적으로만 소란스러운 '석방'과 '사면'과 '복권'이 거듭되었다.

그러나 장기표, 우리들의 장기표 씨는 언제나 석방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감옥에 남아 있는 장기표 씨의 옥고나 분노를 걱정하기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장기표 씨의 부인과 어린 두 딸을 위로해야 될까를 먼저 걱정하곤 했다. 언제나 가장 가까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장기표 씨는 적어도 지금은 우리 곁에 없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이제, 멀리 떨어져 있는 장기표 씨와의 통신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다고 한다. 비록 부인과 어린 두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그것은 실은 다 같이 서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그리고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절절한 그의 메시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옆에, 우리 안에 그가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그의 서한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그와의 만남을 비롯하여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된다.

사실 격렬하기만 한 이미지로 그를 양각시켜 놓은 것은 바로 그를 잡아넣은 권력이요, 이른바 그 촉수로서의 공안당국이었다. 나는 그의 해맑고 조용조용한 몸짓과 말소리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만약 그가 이 시대의 한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그의 몸짓과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도 책임도 나일 것이다. 70~80년대라는 시대가 착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격렬한 투사로 만들어 냈으니까.... 오늘의 장기표, 그는 이 시대가 만들어 낸 대표적인 한 사람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 서한집에는, 한 인간의 투명한 의식이 이 시대에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하나하나의 현상들에 투철하게 조응되어 있다. 때문에, 마디마디 배어나오는 진실에 찬 목소리를 담고 있는 서한집은 바로 이 시대의 아픔의 기록이고, 또한 이 땅에 살아가야 할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는 문제의 제기이며, 동시에 그 해답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 실린 글들은 때로는 아주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때로는 힘을 다하여 성심으로 외치는 메시지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의 글은 우리로 하여금 여기,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생각과 고통을 함께 하기를 바라면서, 일독을 권해 마지않는다.


1988년 4월




[출처] [함세웅 신부] 장기표, 우리들의 장기표 씨| 장기표의 옥중서한 - 새벽노래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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