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고향 후배가 눈물로 쓴 고(故) 장기표 선생에 대한 추모사

polplaza 2024. 9. 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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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아래 글은 고 장기표 선생의 고향(김해) 후배 조자종 씨가 쓴 추모사이다. 고인에 대한 존경과 애틋한 마음을 담아 쓴 글이기에 고 장기표 선생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공유하고자 조 씨의 허락을 받아 아래에 공개한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장기표 선생 빈소)

[추모사]

우상 장기표 원장님!
이 무슨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입니까? 타인에게는 춘풍이고 자신에겐 추상 같았던 늘 밝은 모습이 선한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요. 흐르는 세월을 피해 갈 수는 없기에 언젠가는 이별할 줄 알았지만 너무나 황망히 떠나시다니 가슴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사무치는 허전함을 어찌 감당한단 말입니까. 올곧고 선한 사람들은 왜 이리도 서둘러 세상을 떠나시는 겁니까.

큰 별이 하나 졌습니다. 우리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 거목을 잃었습니다. 당신은 학생. 노동. 민주화운동의 일인삼역을 탁월하게 수행한 선도자였고, 스승이었고, 등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격동의 역사, 고난과 영광의 지난 반세기에 당신이 계셨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축복이었습니다. 일제 식민지와 전쟁으로 인한 폐허라는 조국의 현실 앞에 망연자실 맞딱뜨린 우리는 어떻게든 절망과 좌절에서 일어서야 했습니다. 그 중심에 당신이 계셨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뤄 누리는 번영과 풍요의 바탕에 당신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들 부정하겠습니까.

또 당신께서는 사회를 밝히는 시민운동과 사회의 어두운 곳을 보듬는 복지운동을 불철주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온 열성적인 사회운동가이셨습니다. 아마도 이론과 실천을 이렇게 겸비한 분을 우리 사회에서 다시 찿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우리 시대의 행동하는 지성인이었고 시대정신이었습니다. 공인은 책임감으로 일관해야 하며 지도자는 문학적 상상력과 역사적 해석력과 철학적 비판력을 함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주장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좋은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좋은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간다지만, 좋은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 는 말이 있듯이 좋은 사람의 향기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30대인 그때나 70대 후반이신 지금이나 단정하고 올곧으시며 한 번도 화를 내는 모습을 볼 수 없는, 언제나 웃음이 해맑으신 분이셨습니다. 몸에 밴 겸손,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 드높았고 생각은 사심없고 청렴하며 강직한 성품. 상대방에 대한 자유자재의 배려 그리고 탁월한 설득력.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풍부한 유머. 칭찬에 익숙하고 힐책에 인색했던 인간미. 언행에 격식을 차리지 않았으나 사람을 대할 때는 낮은 데로, 낮은 데로 먼저 고개를 숙일줄 아는 예의. 투박함 속에 숨겨진 그 따뜻한 마음. 어쩌면 운동권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비셨습니다.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자식들도 잘 자랐기에 세상 떠나도 후회할 게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당신의 이러한 모습은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담대히 대처하며, 한결같이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면 열심히 살았다는 방증입니다. 당신은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으시고 화려하되 결코 사치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도 험하게 비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손했던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훌륭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언젠가 댁을 찿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지은 지 30년 넘은 서민 아파트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침 점심 때라 당신께서 "우리 가족이 항시 먹는 점심이니 맛없더라도 함께하자" 며 사모님께 점심상을 내오게 하셨습니다. 자그만 밥상 위에 오른 것은 말갛게 비치는 국물에 띄운 국수와 김치 한 보시기가 전부였습니다. 그 소박한 국수 한사발이 노부부의 맑고 곧은 일생을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역대 정권에서 입각 제안과 전국구 의원직을, 그리고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서 할 일을 한 것일 뿐" 이라며 10억원의 이른바 민주화보상금의 혜택조차 신청을 하지 않았고 배상금도 거부한 이는 유일하게 당신뿐이었습니다.

급성 병마로 입원하는 날까지도 나라 걱정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헌신했던 모습 또한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이면에는 장기표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지켜봐주십시오. 당신이 소망했듯 대한민국은 빛나는 민주화로 영광과 번영의 나라가 되리라 믿습니다.

장기표 원장님!
원장님께서 남기신 그 치열했던 삶의 인간적인 가르침은 저희들 가슴에서 가슴으로 영원히 계승될 것입니다. 원장님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은 보람찬 시기였습니다. 원장님과 한 시대를 같이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소탈하고 후덕한 인품을 가진 원장님의 모습과 그 언덕이 벌써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이제는 놓아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걱정일랑, 미련일랑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쉬십시오. 나라 위한 노심초사, 그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뒤돌아 보지 마시고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우상 장기표 원장님의 영전에 눈물로 추모사를 바칩니다.

고향 후배  조자종 재배 상향
202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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