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연휴(10.5~10.9)가 길어 고향에서 추석을 쇠고 경남 통영에 바람을 쐬러 갔다. 아내가 인터넷을 보고 미리 정해둔 식당이 있었는데, 오후 7시경에 갔음에도 자리가 차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기다려도 안된다는 것이다. 아내의 실망이 컸다. 아내는 괜히 내가 이동 중에 꾸물거려서 '맛집'에서 밥을 못 먹게 됐다고 투덜댔다. 오후 7시면 늦은 것도 아니다. 연휴 기간 중이라 아내처럼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그 가게에 사람들이 많이 온 듯했다.
통영 한산대첩광장 앞으로 나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어둑한 하늘 아래 조명 불빛이 바닷물에 흔들리고 있었다. 당장 식당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주변에 식당 간판은 제법 보였다. 중요한 것은 아내가 만족할 수 있는 식당을 고르는 일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한산대첩광장을 뒤로 한채 골목으로 들어갔다. 입구에 있는 식당들은 만원이었다. 가게 앞에 세워놓은 배너에 메뉴 소개가 있었다. 다행히 내 취향의 메뉴는 아니었다.

조금 더 들어서자 식당이 많이 보였다. 골목 4거리에서 전후, 좌우를 휙 둘러보았다. 그중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앞에 조명을 밝게 하지 않아서, 주변이 어둑하고 좀 허름해 보였다. '동피랑찜'이라는 간판이 크게 보였다. 아내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지나가는 투로 "괜찮다"라고 했다. 동행한 아들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아들의 장점이다.

식당 앞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다. 그곳을 지나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들이 몇 군데서 삼삼오오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빈 자리가 많이 있었다. 식당 내부는 도시풍의 화려함이나 종업원들의 경직된 서비스 분위기는 없었다. 작은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식당으로 보였다. 젊은 아저씨가 자리를 안내했다. 뒤따라 아내와 아들이 들어왔다. 안쪽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무엇을 먹을 것인가? 벽에 걸려있는 메뉴판을 보고 각자 고르기로 했다. 옆자리 손님들이 먹고있는 음식은 아구찜이었다. 그 옆자리도 아구찜이 보였다. 이 집의 주메뉴는 아구찜 같았다.
나는 내가 먹고싶은 걸 선택하기로 했다. 생선구이나 대구뽈탕이 눈에 들어왔다. 생선구이는 2인이상 주문해야 되는 메뉴였다. 아내와 아들이 생선구이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자유롭게 대구뽈탕을 주문할 수 있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15분 이상 걸렸다. 생선을 굽고 탕을 끓이려면 당연한 일이다. 기다리는 동안 속으로 아내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랐다.

먼저 대구뽈탕이 나왔다. 아내와 아들에게 접시에 뜨서 먹어보라고 했다. 아내는 "신선하고 시원하다"고 했다.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간 국물은 보기에도 깔끔해 보였다. 대구의 살점도 식감이 좋았다. 이건 내가 시킨 메뉴여서, 아내가 주문한 생선구이가 나올 때까지 맘을 놓을 수 없었다.

잠시 후, 큰 접시에 제법 큰 3종류의 구운 생선과 소스 격인 간장이 나왔다. 아내가 먹어보더니 신선하고 맛있다고 했다. 아들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가 생선 한 점을 떼서 먹어보았다. 어릴 때 낚시로 잡아온 생선을 갓 구운 그 맛이었다. 아내는 생선이 맛있다면서 처음으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아들은 별말 없이 열심히 집어 먹었다. 생선은 가시를 조심해야 하는데, 둘 다 잘 발라서 먹었다. 나도 종류 별로 맛을 보았다.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생선이 나를 살려주는구나'하고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여보!"하고 나를 불렀다. "왜?" 하면서 내심 긴장했다. "밥 한 공기 더 시켜도 돼?" 아내가 밥을 더 먹으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의외였다. "그래! 더 시켜."하고 내가 말했다. 아내가 밥 한 공기 더 먹겠다는데 반대할 남편은 없을 것이다. 추가로 한 공기를 다 먹는 게 부담스러웠든지 아내는 "나눠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배불러서 더이상 못 먹는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정량주의라서 많이 먹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한공기 시켜서 아들이랑 나눠먹든지, 혼자 다 못먹으면 남기든지 하라고 했다. 아내는 밥 한공기를 더 달라고 주문했다. 식당에서 밥을 추가하는 아내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생각건대 생선구이가 맛있었든지, 배가 고팠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두 가지 다 일 수도 있겠지만, 생선구이와 간장 맛 때문에 식욕이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나까지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댔으니 마침내 뼈와 가시만 남았다. 대구뽈탕도 좋았지만, 생선구이는 아내에게 최고 인기요리였다. 여러 메뉴 중 메뉴 선택을 잘 한 셈이 됐다. 다른 손님들이 대부분 아귀찜을 시켜 먹는 것을 보면, '동피랑찜' 식당의 주메뉴는 아구찜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먹은 '생선구이'는 그 자체로 100점 만점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만족하고, 내가 만족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식당을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다. "생선구이가 신선하고 맛있네. 생선구이 덕분에 당신 살았다"고 웃었다. '인터넷 맛집'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못 한 것을 두고 나를 원망하다가, '동피랑찜'에서 생선구이를 맛있게 먹은 것으로 마음이 풀린 것이다. 다행이었다. 식사의 메뉴 하나가 우리의 기분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동피랑찜 식당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서 아내는 "저 정도 생선구이가 1인당 1만 원이면 싼 것 같다"면서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 같다"고 나름 짐작했다. 나는 "오늘 생선구이 주문 안 했으면 큰 일 날뻔했네"라고 혼잣말로 말했다. 내 말을 엿들은 아내는 "생선구이 정말 맛있었다"면서 "그래도 다음에는 그 집에 가서 먹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만원이라서 못 먹었던 '인터넷 맛집'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그래, 다음에는 거기 가서 먹자!"하고 응수했다. 언제 통영에 올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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