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4가 전철역(2호선) 주변으로 벽지가게가 늘어서 있다. 타일이나 변기, 전등, 싱크대 등 가정용품을 파는 가게들이 섞여 있다. 이곳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이사를 할 때였다. 주인아주머니가 이곳에서 벽지를 주문해 놓은 것이 있다면서, 필요하면 계약서도 있으니 사용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전세로 이사를 하면서 벽지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계약한 벽지가 다른 곳보다 쌌다. 아마도 20~30만 원 정도 저렴했던 것 같았다. 이런 이유로 주인아주머니가 계약했던 벽지 집에서 벽지의 종류만 다른 것으로 골라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벽지 가게는 벽지만 파는 터라 벽지를 바르는 도배사는 따로 구해야 한다. 이 가게에서 도배사 한 분을 추천해 줬으나, 다른 가게에서 추천해 준 도배사를 쓴 것 같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을지로 4가에 있는 벽지 가게를 방문하게 된 것은 주방 쪽 벽에 곰팡이가 생겨 벽지를 새로 발라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쯤 천장 바로 아래 벽 쪽에서 검은 얼룩 점이 생기더니 꺼멓게 커졌다. 그리고 몇 군데 더 생겼다. 둥근 형태의 얼룩점이 점점 커져 벽의 한쪽을 시커멓게 만들었다. 얼룩진 벽지를 뜯어내자 시멘트 모래 틈 사이로 검은색 곰팡이가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 다음날 다이소에서 곰팡이 제거제를 사 와서 구석구석 닦아냈다. 뜯어낸 곳에 쓰다 남은 벽지를 바를까 하다가, 다이소에서 본 스티커형 벽지가 생각이 났다. 며칠 후, 다이소에 또 가서 스티커형 벽지를 구했다. 마침 '곰팡이 방지용'이라고 쓰인 스티커형 벽지가 보여 그걸 선택했다.
이 스티거 벽지를 붙인 후 벌써 1년이 흘러갔다. 보기가 좋지 않을 뿐이지, 주방을 이용하는데 불편은 없었다.
그런데, 두어달 전 아파트 관리실에서 수전을 교체하려고 왔다. 이 수전은 낡아서 물이 샌 것은 몇 년 됐다. 아마 이사왔을 때부터 물이 조금씩 샜을 것이다. 그 때는 손잡이를 좌우로 움직이면 물이 멈출 때도 있었다. 여하튼 손잡이로도 조절이 안될 정도로 물이 새기 시작해 인터넷에서 수전 부품을 구매했다. 처음엔 직접 교체할 생각을 했으나 집에 있는 도구로는 사이즈가 안 맞아 관리실에 부탁을 했다.
수전을 교체하려 온 관리실 아저씨에게 벽에 곰팡이 난 것에 대해 이야기를 건넸다. 아저씨는 당시 내가 찍은 사진을 핸드폰으로 보내 준 적이 있어서 벽지에 곰팡이가 생긴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위쪽에서 물이 샌 것은 맞으나 윗집과는 상관 없고, 아래증과 윗층의 중간 부분인 '공유부분'에서 물이 샌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그래서 관리실에서 조치를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며칠 후, 관리실 소장과 아저씨가 같이 와서 벽 상태를 확인했다. 곰팡이가 생긴 쪽만 도배할 것인지, 주방쪽 전체를 도배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일부만 도배를 해도 되겠지만, 전체를 하기로 했다. 벽지를 부분만 바르면 누래진 기존 벽지와 어울리지 못할 것이고, 특히 주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된 후, 며칠 전 관리실 아저씨한테서 연락이 왔다. "벽지 종류를 알 수 있느냐?"고 했다. 실크가 아닌 합지인 것은 분명한데, 디자인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유사한 것들이 많아서 헷갈릴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몇 년 전 이사할 때 벽지를 주문했던 가게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시간을 내서 찾아갔더니 모두 영업을 하지 않았다. 주말에는 모두 쉬는 모양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평일 저녁에 다시 갔다. 옛날 벽지를 샀던 그 가게 안에 불빛이 보였다. 먼저 찍어간 사진으로 보여줬더니 종류를 찾지 못했다. 다행히 옛날 주인이 보내준 계약서가 핸트폰 문자 메시지에 남아 있어서 보여주었다. 벽지 가게 직원은 계약서를 본 후, 바로 벽지의 종류를 알아냈다. 계약서에 벽지의 번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격만 알아보면 됐다. 가격은 1롤에 22,000 원이라고 했다. 1롤의 길이는 17.8m, 폭은 93cm라고 했다. 2롤만 구입하면 충분할 것 같은데, 현재 재고가 없다고 했다. 주문해서 오는데 다음날 오후 4시 이후라야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다시 가게로 찾아오든가, 아니면 퀵 배송을 받아야 했다. 관리실하고도 소통을 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 주문은 보류했다.
가게를 나서면서 벽지 내용을 상세히 안내해준 벽지 가게 분에게 감사했다. 다음에 벽지를 구할 일이 있다면 이 가게에서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사할 때 벽지를 새로 한다면, 벽지 가게와 맺은 계약서를 보관하든가 벽지의 번호를 기록해둘 필요가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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