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장기표 선생의 점심 식사 기행

polplaza 2024. 1. 1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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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재야 정치인'으로 불리는 장기표 선생과 점심을 같이할 때가 많다. 장 선생의 외부 일정이 없을 경우, 사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으러 간다. 이 때 어디로 밥을 먹으러 갈지 십중팔구 나에게 물어본다. 이유는 가격대가 저렴하면서도 깔끔하고 먹을 만한 메뉴를 추천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주로 추천하는 메뉴는 7~8천원대의 부페식 한식, 9천~1만원 사이의 생선까스나 돈까스, 8천~1만원 사이의 칼국수나 팥죽, 1만1천원 이하의 양지탕이나 순대국, 1만원 수준의 추어탕 또는 고등어 구이, 강된장, 순두부 등이다. 전체적으로 최고가가 1만1천원이다.

장 선생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메뉴는 1만원대 이하인 돌솥비빔밥과 김밥(우동 등은 별도) 등이 있다. 내가 추천한 메뉴가 댕기지 않는 날에는 김밥집이나 돌솥비빔밥 식당으로 일행을 유도한다. 일행들이 꺼려하면 즉각 포기하고 내가 제안한 식당으로 가기도 한다. 일행들은 장 선생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내가 제안한 음식을 선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장 선생이 선호하는 돌솥비빔밥을 하는 식당은 '소공동 뚝배기(이하 뚝배기)'라는 상호를 달고 있다. 내가 추천한 생선까스와 돈까스를 먹으러 가려면, 반드시 이 가게 앞을 지나가야 한다. 뚝배기 가게는 건물 1층 출입구 바로 오른쪽에 있고, 생선까스와 돈까스 가게는 이 건물 지하 1층에 있기 때문이다.

장 선생과 나는 물론이고, 우리 일행 모두가 뚝배기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를 잘 안다. 한 달에 최소 3~4번은 가기 때문에 서로 낯이 익었다. 아주머니는 주로 음식 서빙을 하고 출입문 쪽에서 결재를 한다. 주인 아주머니는 가게의 유리창문으로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충분히 볼 수 있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아저씨는 주방 요리를 전담한다.

이틀 전, 일행 다수의 동의로 생선까스 식당으로 가게 됐다. 식당 건물에 다다르자 장 선생이 갑자기 일행에서 이탈했다. 홀로 왼쪽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건물 왼쪽 모퉁이에서 꺾어서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다른 일행들은 삼삼오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장 선생에게 "왜 멀리 돌아서 오십니까?"라고 물었다. 장 선생은 "그거 왜 물어?"라고 웃으셨다. 나는 "선생님이 여기만 오시면 항상 멀리 돌아서 오시니 건강에 좋으시겠습니다"하고 웃고 말았다. 장 선생도 "허허~ 이 사람이요." 하고 그냥 웃으면서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사실 나는 그 이유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전에도 물어봤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장 선생이 이 건물 앞에서 혼자 고개를 숙이고 모퉁이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 의아스러웠다. 그 이유에 대해 장 선생은 "내가 저기(소공동 식당) 가서 팔아줘야 하는데 다른 식당으로 가니 미안해서 그런다"고 했다. 뚝배기 가게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보일까봐 피해간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생선까스 가게로 갈 때마다 장 선생의 이런 모습을 보고 혼자 웃는다. 뚝배기 가게를 피해 모퉁이로 돌아가는 행동이 항상 반복되기 때문이다. 가끔은 사무실을 나올 때 미리 말씀드리기도 한다. "선생님, 오늘도 조금 멀리 걸으셔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이다. 장 선생은 "그러게, 아주머니한테 미안해서 좀 걸어야겠네"라고 대답한다. 다른 일행들은 두 사람의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관심이 없다.

주말인 오늘, 장 선생은 평소처럼 나에게 "어디로 가지?"하고 물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청국장과 생태탕 하는 식당을 제안했다. 일행 중 좋다는 반응이 나왔다. 나는 별 생각없이 메뉴 위주로 추천했는데, 이 식당도 '뚝배기 식당'이 있는 건물의 지하에 있다. 미처 '뚝배기 식당'과 같은 건물에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의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무조건 뚝배가 가게 앞을 지나가야 하고, 장 선생은 늘 하던대로 건물의 한쪽 모퉁이를 돌아서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이틀 전 생선까스 식당으로 가면서 돌아가는 기행을 보인 적이 있는데, 이틀만에 또 그런 기행을 보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반응은 재빨리 나왔다. 장 선생은 "야, 오늘은 뚝배기 집으로 가는 것이 어때?"하고 역제안을 했다. 다른 일행들이 주춤했다. 메뉴가 뻔하고, 가끔 가는 곳이어서 탐탁지 않은 듯했다. 나는 제안은 했지만 청국장 식당을 강하게 밀고 나갈 수 없었다. 이전에 가봤던 곳이라, 식당 내부 상태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장 선생이 '뚝배기 식당'으로 가야되는 이유를 덧붙여 설명했다. 장 선생은 "거기 뚝배기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아주 예쁘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거기로 가자"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행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나는 참을 수 없는 한마디를 던졌다. "선생님, 연세를 생각하셔야죠?". 그러자 일행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엘리베티어 안에서 내 뒤에 서 있던 장 선생은 나의 허리를 콕콕 찔렀다. "이 사람이요, 내가 아직 정정한대~" 하고 웃으면서 자꾸 찔렀다. 
장 선생의 강력한 추천에 오늘은 뚝배기 식당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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