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선생은 생전 적대적 공생관계인 양당정치의 악순환을 혁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중의 하나가 2022년 연말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 개설한 신문명정치아카데미 최고위과정이었다. 선생이 설립한 사단법인 신문명정책연구원과 동국대가 공동으로 이 과정을 개설, 운영한 것이다.
선생은 앞서 신문명정책연구원 주도로 신문명정치아카데미 과정을 3차례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정치에 관심있는 분들을 대상으로 저명한 강사들을 초빙해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했다. 이른바, 사설 아카데미였지만 수료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필자는 선생의 추천을 받아 3기로 수료했다.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매달 3번째 토요일을 기해 심신 수련과 친목을 다지는 산행을 하기도 했다. 처음엔 '산소리물소리'회였는데, 작명은 권영걸 전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이 했다. 동국대 최고위과정 수료생들이 나오면서 '신문명산악회'로 명칭이 변경됐다. 지금도 매달 산행은 이어지고 있다.
선생이 정치아카데미에 집착한 이유는 하나였다. 올바른 정치지도자들을 양성하여 한국 정치를 혁신하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마쓰시타 정경숙(松下政經塾) 같이 한국에도 민간 주도로 정치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전문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마쓰시타 전기(현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초대회장이 사재를 털어 40여년 전 설립한 정치지도자 양성소다. 이런 기관을 한국에 설립하여 한국 정치를 바꿀 새로운 정치지도자들을 양성하면, 한국정치를 혁신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국대와 공동으로 진행한 신문명정치아카데미 최고위과정은 2022년 11월 15일(개강)부터 이듬해 2023년 2월 7일까지 3개월 과정이었다. 신문명정책연구원이 단독으로 진행했던 기존 3차례 아카데미와 다른 점은 동국대 총장 명의의 수료증 수여, 동국대 동문 자격 부여 등 대학에서 제공하는 혜택이 추가된 것이다. 동국대 신문명정치아카데미 최고위과정 1기생은 지방의회 기초 의원들도 참여하는 등 입학생이 46명이었을 정도로 출발이 좋았다.
선생은 1기생들에게 미리 준비해둔 '신문명 5대 생활수칙'을 발표하고 꼭 실천해줄 것을 당부했다. 5가지 수칙은 첫째 시간엄수, 둘째 금연절주, 셋째 욕설불용, 넷째 잔반불기, 다섯째 일일일선이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들 좋은 내용이라고 박수를 쳤다. 옳은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신문명 5대 생활수칙
(1) 시간엄수 – 시간약속을 철저히 지킨다. 언제나 약속 시간 5분전에 도착하도록 한다.
(2) 금연절주 – 금연하고 술은 조금만 마신다.
(3) 욕설불용 – 욕설을 하지 않는다.
(4) 잔반불기 – 먹을 만큼만 접시에 담아 먹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5) 일일일선 – 하루에 한 가지 이상 남을 돕거나 배려하는 일을 한다.
5대 수칙은 선생이 평소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것을 최고위과정을 계기로 압축, 정리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필자에게는 도저히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었다. 2번째 항의 금연절주 중 금연이었다. 술이야 거의 마시지 않지만, 40여 년 동안 피워온 담배를 끊는 것은 불가능했다. 선생은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을 적당히 마시는 편이라, '금연절주'가 몸에 벤 생활습관이었다.
나는 1기생이 아니지만 5대 수칙을 무시할 수 없었다. 신문명정책연구원의 일원으로서 최고위과정 학사 업무를 지원하는 '지도교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강요하는 것은 아니므로 과민할 필요는 없었지만 의문점이 하나 있었다. 담배는 왜 완전히 끊어야 하고, 술은 왜 조금이라도 마실 수 있도록 하는지 말이다. 기회가 있을 때 선생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연구원 식구들과 식사 자리 때 "선생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하고 내가 물었다.
"뭐가?"
"신문명 5대 생활수칙 중에 금연절주 있잖습니까?"
'햐~ 이 사람이요." 선생은 이미 눈치를 챈 표정이었다.
"금연금주로 하든가, 절연절주로 하든가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형평에 맞지 않겠습니까?"
"내가 옛날에 담배를 피웠는데 끊었어요. 오래 됐어요. 담배는 몸에 안 좋고, 내가 볼 때 백해무익해요. 술은 반주로 마시면 몸에도 좋다잖아요. 자네도 이참에 담배를 한번 끊어보지." 선생은 웃으며 필자에게 금연을 권유했다. '금연절주'를 실천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하게 느껴졌다. 담배는 끊되 술은 조금씩 마셔도 된다는 것이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금연절주에 대한 선생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애연가와 애주가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애연가가 금연하면 애주가도 금주하고, 애연가가 절연하면, 애주가도 절주하고 그래야 합리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신문명 5대 생활수칙 중 금연절주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나는 아직 애연가이다. 선생은 애주가임이 틀림없다. 금주를 하지 못하시고 절주하시는 걸 보면 그렇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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