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곡자이자 작곡가인 김용년 씨가 2026년 2월 25일 별세했다. 향년 82세.
대중음악평론가인 박성서 씨는 2월 26일 SNS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를 수놓았던 편곡의 거장이자 작곡가, 김용년(작곡가 예명 김남균) 님께서 2026년 2월 25일 우리 곁을 떠나 영면하셨다"며 "그가 남긴 3,700여 곡의 선율은 이제 우리 가슴 속에 영원한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고 고인의 부고 소식을 전했다.
박성서 평론가에 따르면, 고인은 전날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총회에 참석하여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으며,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한 지 3시간 만에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자정 무렵 세상을 떠났다.

박 평론가는 고인에 대해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편곡가로 진로를 바꿔, 한국 대중음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며 "특히 김희갑 작곡의 노래는 거의 대부분 편곡을 도맡았다"고 했다. 박 평론가는 "‘향수(이동원 박인수)’ ‘킬리만자로의 표범(조용필)’, ‘사랑의 미로(최진희)’, ‘립스틱 짙게 바르고(임주리)’, 그 겨울의 찻집(조용필) 등, 그 외에도 이용의 ‘잊혀진 계절’,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김수희의 ‘남행 열차’, 태진아의 ‘옥경이’,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등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수많은 명곡이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작곡가로서 김남균이라는 예명을 쓰며 혜은이의 ‘피노키오’, 박인수·이수용의 '사랑의 테마'와 유익종의 '추억의 안단테' 등을 작곡, 발표하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세상에 내놓았다"며 "현재 저작권협회에 약 3,700곡이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그동안 많은 작업을 해오셨다"고 고인의 업적을 평가했다.
1944년 서울 창신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작곡가로 나서기 전인 1969년 6인조 록밴드 ‘롤링 식스’의 일원으로 월남(베트남)의 미군쇼 무대에 오르며 음악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기타리스트 김광정, 가수 이숙 등과 함께 오르간을 담당하며 음악적 기량을 닦았다. 귀국 후에는 록밴드 ‘비블루’를 거쳐, 1972년 라틴 음악 그룹 ‘조커스(Jokers)’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건반 연주자이자 편곡자로서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 박 평론가의 설명이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김지원 여사와 아들 김동건(전 탤런트), 그리고 딸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일원동)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월 28일 오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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