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 숨은 이야기

polplaza 2021. 4. 1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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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올림픽 역사상 공식 주제곡 가운데 최상의 노래로 꼽히는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Hand In Hand)'는 전세계에 1,700만장 이상의 앨범이 팔렸다. 이태리 출신의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Giorgio Moroder)는 돈방석에 올랐다고 한다. 벌써 30여년이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의 공식 노래 '손에 손잡고(Hand In Hand)'가 탄생하는데 있어,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있다. '손에 손잡고'의 노랫말에 우리나라 구전민요 '아리랑'을 표현한 영문 'Arirang'이 들어가 있다. 뜬금없이 아리랑이 어떻게 가사에 들어가게 됐을까. 세계인이 좋아하는 '손에 손잡고'가 탄생하게 된, 그 숨은 이야기를 취재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주제곡은 '아침의 나라에서'로 사실상 내정돼 있었다. 이곡은 박건호 작사, 길옥윤 작곡, 김연자의 노래로 서울올림픽 주제곡으로 준비한 노래였다. 올핌픽을 1년여 앞두고 이것을 결정적으로 바꾼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서울올림픽 개·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았던 이어령 교수(이화여대, 1991년 문화부 장관을 맡는다)였다.

(88서울올림픽 개막식 성화 채화/ 자료: IOC)



이어령 총감독은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찾아가 '아침의 나라에서'가 지구촌 세계인들을 상대하기엔 호소력이 약하다며 주제곡을 새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세직 위원장은 "같은 생각"이라며 이어령 총감독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SLOOC)는 즉시 새 주제곡 공모 작업에 착수했다.

서울올림픽조직위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진 음반 기획사들을 상대로 올림픽 주제가 공모를 실시했다. 이 때 선정된 음반사가 폴리그램
(PolyGram) 사(社)였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폴리그램은 올림픽 주제가의 제작, 유통에 드는 비용 전액을 자부담하고, 가사 저작권을 헌납하며, 앨범 판매 100만장 이상부터 장당 3%의 인세를 조직위에 지급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서울올림픽 주제곡 음반사로 선정된 폴리그램사는 작곡가로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혁신적인 연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조르조 모로더를 추천했다. 모로더는 아카데미 최우수음악상(1978년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을 수상하고, 1984년 LA올림픽 주제가를 작곡했던 인물이었다.
이어령 총감독은 한국을 방문한 모로더에게 주제곡을 만들 때 4가지 사항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첫째, 한국의 사물놀이 장단을 넣어달라.
둘째, '벽을 넘어서(Breaking down the walls)'라는 단어를 넣어달라.
셋째, '아리랑(Arirang)'을 꼭 넣어달라.
넷째, 올림픽이 열리는 한국의 수도, '서울(Seoul)'을 넣어달라.

모로더는 우선 사물놀이 장단에 대해 "너무 강하다"며 넣기 어렵다고 밝혔다. '벽을 넘어서'는 넣겠다고 했다. '아리랑'에 대해서는 "무슨 뜻이냐?"고 이 총감독에게 물었다. 이 감독은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우리 민족과 관계된 것"이라며 "노래 끝에다가 하나 붙여달라"고 했다. 모로더가 2절 영어 가사의 끝에 영어권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Arirang' 단어를 넣은 것은 순전히 이 감독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 역시 Arirang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한국을 상징하는 단어로 여겼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이 "서울(Seoul)을 넣어달라"고 한데 대해 모로더는 "Soul(영혼) 아니냐?"며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발음이 비슷하니까.

이어령 총감독은 사실 한국인 작사가와 국내 유명 가수를 붙이고 싶었다. 이에 대해 모로더는 "영어 작사와 리듬은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며 자신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미국인 작사가 톰 윗록(Tom Whitlock)과 같이 하고 싶다고 밝혔다.
모로더는 또 주제곡을 부를 가수에 대해 "영어에 익숙한 가수가 불러야 한다"며 당시 독일과 유럽에서 유명세를 타며 활동 중이던 한국인 4인조 보컬그룹 '코리아나(Koreana)'를 추천했다. 코리아나 멤버는 이승규, 이용규, 홍화자, 이애숙 씨로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 총감독은 모로더의 이같은 제안을 수용하고 영어 주제곡 작업을 일임했다.

이 총감독은 올림픽 주제가의 한글 가사를 쓸 사람도 직접 섭외했다. 독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김문환 서울대 미학과 교수(2018.5.21. 작고)에게 영문 가사를 번역하는 한글 작업을 맡겼다. 국내 유명 작사가가 아닌 미학 전공 교수에게 한글 가사 작업을 맡긴 것은 이어령 감독의 믿음과 선택이었다. 김 교수는 '손에 손잡고' 가사에 철학자로서, '진리'를 담고 싶어했다고 한다(참고 글: 88 서울올림픽 주제곡 '손에 손잡고' 가사).

이 총감독의 주문사항을 받은 모로더는 한국의 고유 음율을 담기 위해 강강수월래, 아리랑, 대중가요 등 약 3천곡을 들었다고 한다. 88서울올림픽 주관방송사였던 KBS, MBC가 자체 보유 중이던 국내 가요, 민요 등 총 3천곡을 뽑아서 모로더에게 줬다는 것이다. 모로더는 이 곡을 모두 듣고, Hand In Hand를 마침내 완성시켰다.

이어령 총감독의 열정과 노력으로, 88서울올림픽 주제곡은 '손에 손잡고'라는 불후의 명작으로 탄생했다. 작곡을 맡은 모로더는 이 감독이 요구한 4가지 중 '벽을 넘어서''아리랑'을 영문 가사에 반영했다. 가사에 서울(Seoul)을 넣지 않았지만, 대신 한국을 상징하는 'The morning calm'을 넣었다. 'The morning calm'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뜻으로 대한민국을 은유하는 영어권 표현이기 때문이다. 모로더가 ' Seoul'을 넣지 않은 것은 'Seoul'을 'Soul'로 해석하여, 대한민국의 영혼을 곡에 담으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영어 가사 후렴구에 'Arirang'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 그것은 한민족에 흐르는 '민요 아리랑'의 정서를 담고 싶었던 이어령 총감독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벽을 넘어서(Breaking down the walls)'는 서울올림픽이 동서 냉전시대를 끝내고, 손에 손 잡고 화합과 평화, 공존과 공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서울올림픽 주제곡이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보이지 않게 가사에 까지 많은 신경을 쏟은 이어령 총감독의 통찰과 민족애를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손에 손잡고(Hand In 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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