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조선시대 4소문 가운데 하나, 광희문

polplaza 2021. 6. 21.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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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20(일) 오후 서울 중구 소재 광희문 모습이다.

조선시대 서울 성곽의 4소문 가운데 동남쪽 문으로,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고도 불린다.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 동대문과 남대문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422년(세종 4) 개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숙종실록에 1711년(숙종 37) 민진후(閔鎭厚)의 건의로 금위영(禁衛營)으로 하여금 개축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719년에 석축 위에 문루를 짓고 ‘光熙門’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광희문은 일제가 전차궤도를 부설하면서 성곽을 철거할 때도 문과 문루는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문루가 파괴된 상태로 방치되었다.
1975년에 도성복원 공사를 할 당시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는데, 홍예석축()을 해체하여 남쪽으로 15m 옮겼고, 문루를 12평 크기로 재건하였으며, 주변의 2백평을 녹지화하였다.

광희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보면, 인조 2년(1624) 이괄이 난을 일으켰다가 수구문을 통하여 도망쳤다. 병자호란(1636)때는 인조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문을 통과하여 도성을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은 옥수동 두모포나루로 한강을 건너와 광희문을 통해 인현동에 있던 지정숙소인 동평관으로 향하였다. 

참고자료: 네이버지식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산백과, 대한민국 구석구석

(광희문 현판)

 

(광희문 정문)

 

(광희문 정문이 보이는 측면)

 

(광희문 측면)

 

(광희문 후문, 오른쪽으로 복원된 서울도성 성곽이 보인다)

 

(서울의 4대문과 4소문/ 출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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