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아이들 이야기

버리지 못하는 영수증

polplaza 2021. 6. 2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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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 속의 잡동사니를 정리하다가 영수증 하나가 눈에 띄었다. 2021년 5월 8일자 내가 사용한 신용카드 영수증이었다. 신용카드 영수증이라면, 버리면 그만인데 그동안 가방 속에 들어있었던 모양이다.
금액을 보니 일시에 11만원의 거금을 지출한 영수증이었다. 평소 담배와 커피 등으로 소액 지출이 다반사인데, 이 영수증은 평소와 다른 사연이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영수증 발급처를 살펴보니, 'oo탄'이라는 곳이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군대간 아들 녀석이 휴가를 나와서 제안안 음식점 이름이었다. 아내가 밥을 사주겠다고 하자, 아들이 'oo탄'에서 밥을 먹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모처럼 "그럼, 아빠가 밥 살게~"하고 호기롭게 큰 소리쳤던 기억이 났다.

물론,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식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집에서 나의 처지는 그렇지가 않다. 오랫동안 자의반 타의반 돈을 벌지못하고 살다보니 집안의 주요 지출은 아내가 책임져왔다. 아내는 아직도 직장생활을 하고 나는 반푼수 비슷하게 살아오다보니 지출은 늘 아내 몫이었다.

그랬는데, 휴가 나온 아들이 자기가 원하는 식당에서 가족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버지인 내가 지갑을 열지 않고 아내에게 맡기는 것은 아빠의 도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 밥 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아내가 "당신은 돈이 어디에 있지?"하고 웃으며 물었다. 나는 "돈은 카드로 쓰면 되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아내가 '카드는 누가 갚지?'하고 물어볼 것 같았으나 묻지 않았다. 밥값을 못낼 정도로 살면 아버지의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어쨌든 식대 계산을 양보해준 아내가 고맙다~.

이 식당은 체인으로 운영되고 있는 고깃집이었다.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젊은이들에게는 꽤 알려진 곳 같았다. 나의 평소 식단과는 동떨어진, 생소한 메뉴가 나왔다. 그래도 아들 녀석 덕분에 아내와 딸, 그리고 나, 넷이서 점식 식사를 함께 하며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식당에서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래서 그 추억의 증표로 영수증 하나를 버리지 못하고 가방 속에 담아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마지막 휴가를 나왔던 아들.
아들은 휴가 기간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면서 겨우 하루 점심시간을 가족에게 내 준 것이다. 군인 신분으로서 가족과 함께 한 외식은 마지막이었다.

훗날 그런 기억조차 사라질 수 있지만, 이 영수증은 그날 가족이 다 모여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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