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인간이 이등병이냐

polplaza 2021. 1. 3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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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같은 놈에게서
간접적인 충격과 피해를 당했다.
군대를 잘 모르는 놈에게서.

"계급이 이등병이지 인간이 이등병이냐."는 말이 있다.

이등병은 역시 할 수 없나 보다.
군대서는 철부지 아이에 지나지 않는가 보다.

아까운 젊음을 원통해하면서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새벽 05시 10분경.
이등병이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함께 철수하던 분대장과 일병 고참을
총으로 쏴 죽이고
북으로 도망치다가
지뢰를 밟고 죽었단다.

미친 자식!
한 발의 총탄에
아까운 청춘이 스러지고
지금까지 해 온
군생활이 물거품이 되다니

아, 원통하다.

조국의 방책선 일부를
담당하다가
적도 아닌 애송이 졸병에게
죽임을 당하다니….

말을 잊었다.
부디 명복을 빈다.

위의 글은 '행군의 아침'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분이다. 

1984년 9월 15일 새벽 5시 10분경,
강원도 최전방 철책선 경계를 담당한 인근 부대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였다.

우리 소대장은 이 같은 사고를 전하면서 소대 내 상·하급자 사이에 갈등이 없도록
내무 생활을 잘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당시 일병이었던 나는 소대장이 전한 사고 내용을 듣고 위와 같은 내용으로 수양록을 적었다.
일부 고참들이 졸병들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총으로 쏴 죽일 일은 아닌 것이다.
군기가 제대로 들어있었다면 절대로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엔 GP에서 일병이 소초원들에게 총을 난사해 다수의 젊은이들을 죽이더니,
어제는 이등병이 상병 등 2명을 쏘고 무장 탈영했다가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쏴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군대가 존재하는 한 이런 일은 언젠가 재발할 개연성이 높다.
내가 군생활하던 1980년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그 전에도 이런 유사 사고는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엔 언론통제가 잘 돼서 외부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분대장이 됐을 때 철책선에 올라가 6개월간 근무했다.
우리 부대는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철수했다.
우선 분대원들의 관리가 잘 돼야 하고, 상하급자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엄격한 군기가 있을 때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군기와 규율 속에서도 일, 이병들을 잘 보살펴 주는 지휘관과 상급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사후 약방문 식으로 사고가 터진 후에 부산을 떤들 소용없다.
군대에서 이런 사고는 한두 번 터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책은 무수히 나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고가 매년 터지는 이유는 대책이 겉돌기 때문이다.
상급 부대 지휘관들이 아무리 입으로 민주군대와 사고 예방을 떠들어도
중요한 것은 일선부대의 병영 분위기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일선 부대의 분위기는 중대장이 좌우한다. 중대장의 임무가 막중하다. 중대장은 병사들을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 그러나 중대장이 일일이 통제하기 어려우므로 소대장과 선임하사, 분대장 등이 소대원들을 잘 통제하고 보살펴야 한다.

특히 군 생활 적응이 안된 이등병과 갓 일병을 단 병사들과 자주 대화를 갖는 것도 좋다. 공식적인 대화의 장을 마련하면 속 깊은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을 건네며 관심을 보이는 것이 좋다.

'계급이 이등병이지 인간이 이등병이냐.'는 말은 '이등병도 사람인데 군대에서는 사람 구실을 못한다'는 반어법이다.

이등병은 군대에서 사람 대접을 못받고 군대의 속성을 잘 몰라 군인 구실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비역은 물론이고 군복무 중인 일병 이상 고참들은 이미 이등병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사병으로 복무한다면 누구나 이등병 시절을 거치기 마련이다.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 번 참고, 두 번 참고, 세 번 참고, 네 번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군 복무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등병 시절, 지내고 보면 모두 추억으로 남는다.

 

(출처: 행군의 아침 블로그. 2006.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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