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머니와 읍내시장에 제사상 보러가다

polplaza 2022. 5. 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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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17일 오전. 어머니와 읍내 시장에 나갔다.

어머니와 같이 시장에 가서 제사용 장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다음날이 할머지 기제사여서 제사상에 올릴 제물을 사러 나간 것이다. 그동안 남동생이 장을 봐왔는데, 이번에는 내가 시간을 내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갔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도 수년만에 장 보러 나가신다고 했다. 처음에는 불안해하시더니, 평소 밀고 다니시는 '노인손수레'를 차에 싣고 가보자고 하셨다.

읍내 가는 길에 면소재지 떡방앗간에 시루떡용으로 멧살과 찹쌀 각 2kg씩 총 4kg을 맡겼다. 예전에는 물에 담겨놨다가 불려서 가져갔는데, 요즘은 쌀 그대로 갖다줘도 떡집에서 다 해준다고 했다. 콩고물은 떡집에 주문하면 알아서 해준다. 주인 아주머니는 내일 오후 3시쯤 떡을 해둘테니 그 이후에 찾아가라고 했다.

공용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고 노인손수레를 꺼내 어머니에게 드렸다. 차가 약간 비뚤해서 바르게 주차하고 나오니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이 어시장이라 그 쪽으로 들어갔다. 가게문을 모두 닫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노인손수레 밀고 가는 할머니 못보셨냐"고 했더니 "저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시장 큰 통로에 어머니가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옆으로 갔더니, 벌써 제사상에 올린 생선과 바지락, 홍합을 다 사셨다고 했다. 내가 낙지가 빠졌다고 하자, 어머니는 "낙지도 있느냐"고 가게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가게 안쪽에 있던 아저씨에게 물어본 후, 한마리 있다고 했다. 잠시 후, 아저씨가 낙지 한마리를 가져왔는데 크기가 작았다. 요즘에는 큰 낙지가 안잡혀서 작은 낙지 밖에 없다고 했다. 가격은 3만원이라고 했다. 한마리밖에 없으니 가격을 따질 처지도 아니고 무조건 사야했다.

알고 봤더니 이날 고성시장의 어물전은 모두 쉬는 날이었다. 한달에 3번, 7자 붙은 날에 쉬는데, 17일이라 모두 문을 닫는다고 했다. 어머니가 평소 알던 어물전 가게도 문을 닫고 없었다. 다행히 어머니가 생선을 살 수 있었던 가게는 채소가게 라인에 있어서 어물전 시장의 공동 휴일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으면서, 나는 바로 옆 과일가게에서 수박 1개와 배 2개를 샀다. 사과와 밀감 등 다른 과일도 사려고 했으나 어머니가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한번에 다사자고 하여 2가지만 산 것이다. 생선 가게 왼쪽으로는 손두부 가게가 있어서 손두부 3모를 샀다. 대파도 샀다. 손두부 가게 아주머니는 내가 다가가자 "사진을 왜 찍느냐?"고 다소 항의하듯이 물었다. 내가 "우리 어머니가 시장보는 것 찍었습니다"라고 하자, 허리가 구부정한 어머니를 한번 바라보고 너그럽게 웃으셨다. 손두부는 이 아주머니 가게에서 샀다. 어머니도 이제 손수레가 없으면 혼자서 걷기 힘든 연세가 됐다.

고성시장에서 생선 장을 다보고, 제수용 돼지고기와 산적용 쇠고기를 사러갔다. 수년만에 가도 정육센터 아주머니는 어머니를 알아보는 듯했다.


다음으로는 면소재지에 있는 농협 하나로마트에 갔다. 어머니는 카트를 밀면서 제수용품을 하나하나 골라서 실었다. 읍내시장에서 안샀던 사과, 귤, 포도, 곶감, 대추, 밤, 유과, 문어 가락, 북어, 게맛살, 도라지, 콩나물 등을 가득 실었다. 딸기는 보이지 않아서 점원에게 물어봤다. 여점원은 "요즘 딸기는 빨리 상해서 갖다놓지 않는다"고 했다. 읍내 시장에서는 딸기가 보였는데 아쉬웠다. 밤은 한봉지에 10개 이상 들어있었지만 크기가 작았다. 제수용이라기보다 식용으로 파는 것 같았다. 고사리는 집에 있는 것으로 쓰기로 했다.

전날 밤 어머니와 함께 제사 음식을 모두 정리한 덕분에 빼먹은 것 없이 장을 다 볼 수 있었다. 목록에는 없었지만, 생수와 음료도 몇개 샀다.

장 보느라 시간이 늦어 점심을 면소재지에서 외식을 했다. 어머니는 냉면을 드시겠다면서 냉면을 하는 갈비탕집으로 갔다. 어머니는 양을 많이 남기셨는데, 그래도 냉면이라서 많이 먹었다고 하셨다. 볼 때마다 밥맛이 없으셔서 많이 안드시는 편이다. 나도 갈비탕 양이 많아서 좀 남겨야 했다. 억지로 먹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살면서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다.

 

(제사상 차림 항목 메모)


저녁에는 동쪽에서 달이 떴다.
거의 보름달에 가까운 달이었다.
육안으로는 떠오르는 달이 둥글고 너무 선명했다.
밤 하늘의 산능선도 뚜렸하게 펼쳐져 보였다.
그러나 카메라로는 육안만큼 선명하게 촬영되지 않았다. 부족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이상 낫다.

5월 18일(수).
온 종일 제사상 음식을 장만했다. 나는 돼지고기 삶는 것과 생선 찌는 일을 맡았다. 어머니는 전 붙이는 일을 했다. 오후에 떡을 찾으러 면 소재지에 나가는 길에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드렸다. 제사 음식 준비를 모두 마치자 허리와 어깨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병원 문닫을 시간이 다 돼서 가도 소용없다고 안가신다고 우기셨다. 내가 고집을 부려 병원으로 모셨는데 오후 6시까지 업무시간이라 주사와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치료 덕분인지 병원 다녀오신 뒤로는 덜 아프신 듯했다.

ps. 5월 18일 밤 10시 할머지 기제사를 지냈다.
제사 중간에 큰 며느리인 어머니와 첫째 숙모가 큰 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불편한 몸으로 큰 절을 두번 올리셨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고하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님, 며느리가 이제 힘이 없어서 제사 준비가 힘들어서 내년부터 아버님 제사와 합치려고 합니더. 그리 아시고 많이 드이소."
내년부터는 할머니 기제사를 할아버지 기제사와 합쳐서 지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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