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어느 할아버지의 병원 자판기 커피 '무료 대접' 사연

polplaza 2021. 2. 28.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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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면 소재지 병원에 가시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아침 식사 후 어머니가 동네 가운데 있는 밭에 나가 잡초를 솎아내는 일을 도왔다. 군내 버스 시간에 맞춰 병원 갈 준비를 했다. 마침 동생 차가 있어서 여유 있게 승용차로 모시고 갔다. 아버지가 다니시던 면() 소재지 병원이었다. 나는 5개월여 만이었다.

어머니가 이 병원으로 가자고 했을 때 내심 의외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땐 이틀에 한번 꼴로 가신다고 역정을 내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근처의 다른 병원을 이용했다. 근래 마음이 바뀌신 것이다. 몇 번 가서 치료를 받아보니 허리와 다리에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병원이 2층이라, 어머니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셨다. 지난해 겨울 아버지와 함께 왔을 때보다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때는 겨울이라 추워서인지 좀 한산했는데. 어머니가 병원에 들어서자 어떤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알아보시고 인사를 했다. 아버지보다 한두 살 아래인데 아버지와 친했다고 어머니가 전해주셨다. 한 분은 아버지와 '갑장(동갑)'이라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서 나도 누구 아들 된다고 인사를 올렸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다는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커피 한잔 하겠냐고 물었다. 노인은 호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 여러 개가 들어있는 투명 비닐봉지를 꺼냈다. 어머니는 집에서 먹고 왔다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노인을 동전을 싼 비닐봉지를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노인 한 분이 또 2층 계단을 올라오셨다. 동전을 갖고 있던 할아버지가 병원에 들어서는 노인을 향해 니 커피 하나 무울래?”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은 그래, 하나 묵자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자판기 커피를 전해주던 할아버지가 새로 나타난 노인에게 어머니와 나를 소개했다. 아버지 이름을 대자 금방 , 그러시냐며 인사를 나누었다. 거기 병원에 나오시는 노인들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병원 치료받으면서 더욱 친해진 것 같았다. 언뜻 지나친 생각이지만, 병원이라기보다 의사가 외진 나온 경로당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감 농사 참 잘 지었다.
“OO
아니모 그리 못한다.
그 전에는 누에고치도 하고 안 그랬나!! 그때는 마 한창 힘 있을 때니까.
그리 갈 줄 우찌 알았겄노.
사람이 다 운명인기라.”
노인들끼리 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어머니는 할아버지들 말을 묵묵히 듣는지 별 말이 없었다.

물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말문을 여셨다.
아버지와 친했다는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너무 애석해하시는 것 같았던 분이었다. 병원에 오시는 노인들에게 커피를 뽑아주려고 비닐봉지에서 100원짜리를 꺼내시던 분, 그 할아버지 이야기였다.

이 분은 오래전부터 병원에 오시는 노인들에게 자판 커피를 뽑아주기로 유명했단다. 병원에서도 대기실에 커피 자판기를 처음 설치했을 때는 무료였다고 했다. 그런데 노인들이 대기실에 앉아서 두세 잔 이상 마시는 분들이 차츰 늘자, 병원 측은 언제부턴가 100원 동전을 넣고 뽑아 가도록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기 돈을 100원짜리로 바꿔와서 병원에 오시는 노인들에게 커피 대접(?)을 했다. 매일 그렇게 하다 보면 벌써 밑천이 동났을 텐데, 할아버지의 '커피 선행'은 매일 이어졌다. 
그 커피를 얻어 마신 분들이 가끔 이 노인에게 1,000원짜리 지폐를 준다고 했다. 커피 뽑는데 보태 쓰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이런 사정을 전해주면서 오랜만에 웃으셨다.

(*2017.05.1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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