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천.
시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단어다. 고 천상병(1930.1.29~1993.4.28) 시인의 대표작 '귀천'이기도 하고, 그의 아내 목순옥(2010년 작고) 씨가 인사동 골목(종로구 관훈동 24번지)에서 운영했던 카페 이름이기도 하다.
'귀천' 간판을 단 카페는 예닐곱 명이 둘러앉으면 꽉 찰 정도로 '미니' 카페였다. 언제쯤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혼자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인사동에 가면 경인미술관과 귀천을 꼭 가보라고 누군가가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날 경인미술관까지 둘러봤다. 경인미술관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귀천에 들러 아마도 '모과차'를 마셨던 것 같다. 체구가 작은 목 여사는 아주 조용하고 차분했다. 직접 주문을 받아 차를 내주었다. 당시 카페에는 두세 명의 젊은이들이 조용히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귀천에는 장년 손님이 많다고 들었는데, 젊은이들이 있어서 내심 놀랐다. 시를 배우는 학생들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다. 천 시인의 아내 목 여사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의 인연이란 그렇게 오고 가는 것임을,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리고 오늘, 우연히 갑자기 사업하는 지인을 인사동에서 만났다. 찻집을 찾다가 그 찻집이 생각났다. '귀천'이다. 목 여사가 돌아가셨는데, 그 찻집은 아직 남아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회의감이 한꺼번에 겹쳤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귀천' 카페가 나타났다. 위치가 옛날 그곳이 아니었다. 종로구 관훈동 83(인사동길 14). 그래도 한번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자 한자로 쓴 '歸天'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 앞에 천상병 시인의 초상화와 행복이라는 시가 걸려있었다. 문학계에 종사하는 듯한 나이 지긋한 분들이 입구 쪽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옛날 그 귀천 카페는 아니었지만, 새롭게 단장한 '귀천' 카페였다.
지인과 나는 모과차를 주문했다. 카페 안에는 소설가 이외수 씨가 젊었을 때, 천 시인과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 얼마 전 작고한 펜화의 대가 고 김영택 화백이 2010년 목영선 씨에게 전달한 펜화 작품 사진도 걸려 있었다.
모과차와 한과(차를 주문하면 덤으로 한과가 따라 나옴)를 들고온 여주인에게 "귀천과 어떤 관계이시냐"고 물어봤다. 그녀는 "(목순옥 여사와) 같이 일한 지 20년 됐습니다. 조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귀천 카페를 이어받은 사람은 천 시인의 아내 목 여사의 조카였다. 천 시인과는 이모부와 처조카 사이가 되는 셈이다. 목영선 씨는 귀천의 새 주인이었다.
진하게 우려낸 모과차가 좋았고, 낮은 테이블과 편안한 의자가 좋았다. 무엇보다 천 시인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과 시로 인테리어를 소박하게 단장한 것도 좋았다. 지인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로나 사태로 생겨난 신사업의 드라마틱한 흥망성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안쪽 벽면에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이 걸려있었다.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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