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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참전 용사 장기표, 고엽제 후유증 왜 숨겼나

polplaza 2021. 3. 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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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는 1978년 8월 월남 파병을 끝내고 귀국했다. 같은 배로 귀국한 부관 참모가 월남에서 고생했다며 후방 부대로 빼주겠다는 제안을 사양하고, 강원도 화천군 사창리 27사단 79연대로 배치받았다. 월남전 참전으로 진급을 빨리한 덕에 병장 계급을 달고, 내무반장을 했다.

부대 복귀 후, 가려움증이 잦았다. 그 때마다 산 속에 작전을 나가서 옻나무에 옻이 탔나 하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지나쳤다. 어느 때는 가려움증이 너무 심해서 군병원으로 진찰을 받으러갔다. 바르는 빨간약과 알약을 타서 먹었다. 그래도 가라앉지 앉았다. 민간 속설에 개뼈다귀를 구해서 바르면 낫는다는 말이 있어서 그런 방법도 써보았다.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 때만 해도 이것이 고엽제의 후유증인지 몰랐다. 고엽제라는 말은 있었지만, 질환으로서 고엽제 후유증은 보고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월남전에서 고엽제를 살포하는 미공군기들/ AP)

 

 

돌이켜 보면, 월남에서 우기에 빗물에 씻긴 고엽제가 섞여서 내려오는 냇물을 무심코 건너거나, 거기에 몸을 담구기도 했다. 기온이 워낙 뜨거워 물 속에 들어가는 것을 마다할 리 없었다. 고엽제가 훗날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키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고엽제가 질병으로서 고엽제 후유증을 유발한다는 사실, 그리고 가려움증은 고엽제의 후유증이란 사실은 훗날 밝혀졌다.

정부에서도 고엽제 피해자가 속출하고 질병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파월 장병들을 대상으로 고엽제 피해 신고를 받아 보상을 했다. 치료도 받을 수 있게 조치했다. 

그러나 장기표는 고엽제 피해자로 신고하지 않았고, 보상도 신청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딸아이 때문이었다. 

중학생이 된 둘째 딸이 몸이 자꾸 가렵다고 호소하는데, 그 순간, '고엽제 후유증이 유전이 되었나' 하고 내심 걱정이 됐다. "만일 내가 고엽제 신고를 하고 보상을 받으면, 딸아이가 나를 원망할 것 같았다"고 장기표는 회고했다. 아빠한테서 고엽제 후유증을 유전받았다고 할까봐 고엽제 환자임을 스스로 숨긴 것이다.

월남전참전전우회는 장기표 같은 사람이 나서서 월남 파병 용사들의 권익과 고엽제 피해 보상에 앞장서 주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장기표는 딸을 의식하여 나서지 못했다. 물론 그는 전역 후에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도피와 수감 생활을 반복하는 바람에 사실 월남전참전전우회에서 파월 장병들의 고엽제 피해 보상 등을 위해 나설 형편도 안 되었다. 고엽제 후유증은 온전히 혼자서 감당할 일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한 후에서야, 주변의 권유로 고엽제 피해를 신고하려고 갔다고 한다. 증거가 없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가려움증 만으로 당시의 고엽제 후유증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신청하라고 할 때 뭐하다가 이제 와서 신고하냐는 의심을 받을 만했다. 부대 복귀 후 군 병원에서 진찰받은 기록을 떼려고 갔더니 자료는 10년간만 보존한다고 했다. 결국 고엽제 피해보상은 증빙자료가 없어서 받을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월남전 참전용사로서 보훈병원에 가면 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요즘도 가려움증이 심할 때가 있지만, 병원에는 거의 가지 않는다고 한다. 수십년간 스스로 참고 견디면서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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