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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조영래)

polplaza 2021. 3. 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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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고 조영래(1947.3.26~1990.12.12) 변호사가 1988년 몇 차례에 걸친 시국사범 석방에도 불구하고 장기표가 석방 대상에서 제외된데 대해 은유적으로 장기표의 죄상(?)을 고한 글이다. 조 변호사는 장기표와 함께 민주화 학생운동을 하면서 1974년 민청학련사건 관련자로 수배돼 6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1978년 전태일의 삶을 재조명하는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 집필을 완성했다. 2009년 9월 재판부는 민청학련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고 조영래 변호사/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장기표 씨와 내가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66년 가을 바로 이맘때, 그러니까 햇수로 쳐서 꼭 22년 전의 일이다. 그 무렵 어느 날 서울대학교 개교기념행사였던가 무언가로 효창운동장에서 교내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1,500m 달리기 시합에 출전한 장기표 씨는 맨 꼴찌로 뒤쳐져서 남들이 골인한 뒤에도 만장의 박수와 폭소를 한 몸에 받으며 온전히 한 바퀴를 혼자서 마지막까지 달렸다.

행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그에게 "실력도 안 되는 사람이 어째 출전할 생각을 했느냐"고 농담 삼아 물어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가을 하늘 아래서 한번 마음껏 달려보고 싶습니다."

가을 하늘은 그때처럼 맑고 높푸르건만, 이번에도 또 양심수 석방에서 제외된 장기표 씨는 그 하늘 아래를 달려가지 못한다. '양심수 전면 석방'을 공약한 '6. 25 선언' 이후 벌써 몇 차례나 석방조치가 있었는데도 그때마다 '탈락'되어 아직껏 철창신세를 져야 하는 그는 대체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 내가 알기로도 장기표 씨가 죄가 없지는 않다. 죄가 많다. 

67년 어느 겨울밤 나는 동숭동 대학로를 끝없이 걷다 서다 하며 베트남 파병부대에 자원 입대하겠다고 하는 그를 온갖 말을 동원해가며 만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고 나로서는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지 않고는 뱃길 수 없다"고 하는 마지막 말로 나를 단념시키고 말았다.

그 역사의식이 그의 첫 번째 죄였다.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서울법대까지 들어왔으면 육법전서 한가지만을 의지해서 판검사로 출세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일이지 목숨을 걸고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겠다는 것이 대체 무슨 망령된 생각인가? 
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절규하며 스물둘의 젊음을 스스로 불살라 죽었을 때, 장기표 씨는 누구보다도 먼저 성모병원 영안실로 달려가 그의 주검을 온몸으로 껴안았다. 

그 이후 십수 년 그는 끝없이 되풀이되는 투옥과 도피생활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민중의 곁에 있었다. 배고픈 자와 함께 배를 곯았고, 아픈 자와 함께 앓았고, 통곡하는 자와 더불어 눈물을 흘렸고, 분노하는 자를 위하여 외쳤다. 

바로 그 사랑이 죄였다. 그는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꿈꾸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 했다. 그것이 죄였다. 

모두가 외면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쳐다보았단 말인가? 무엇 때문에 혼자 가슴을 앓아야 했단 말인가? 

72년의 유신체제 수립, 그리고 80년 5공의 광주학살, 이런 무시무시한 일을 겪으며 사람들이 좌절과 침묵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때에, 그는 오히려 '군사독재 타도'의 결의를 더욱 굳히고 불철주야로 민주화운동의 재건을 위해 뛰어다녔다. 깡마른 체구의 한 병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불의한 권력 앞에 무릎 꿇기를 끝내 거부하는 그 '터무니없는' 자존심, '유연한 타협'을 모르는 그 지나친 강직함이 그의 죄였다. 

장기표 씨가 어떤 사람이냐고 누가 내게 물을 때면 나는 한마디로 "그는 순수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한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어부의 노래를 그는 알지 못한다. 세상이 다 취해도 홀로 깨어 있으려고 하는 그 지나친 순수함이 그의 병이요, 그의 죄이다.

이처럼 장기표씨의 수많은 '죄상'을 역력히 알고 있는 나로서도, 그가 매번 석방에서 탈락되는 데 대해서 한 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장기표 씨가 징역 7년이라는 형기의 3분의 1을 채우지 못하여 "가석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7년의 형기가 그다지도 신성하고 정당한가? 전경환 씨가 징역 7년, 문귀동 형사가 징역 5년인데, 과연 장기표 씨가 이 사람들보다 더 끔찍하고 용서받지 못할 대죄를 저질렀는가? 이해하기가 어렵다.

올해 따라 가을날씨가 왜 이다지도 청명한지 아득한 하늘을 우러르면 알 수 없이 마음이 저려온다



[출처]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한겨레신문, 1988. 10. 6.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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