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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교수, "내가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자?”

polplaza 2022. 12. 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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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평중 한신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2012년부터 11년 동안 조선일보에 써오던 '윤평중 칼럼'을 잠시 멈춘다고 2022년 12월 23일 공식 입장을 밝혔다.

윤 교수는 이날 SNS에 올린 {'윤평중 칼럼'을 멈추면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칼럼니스트로서 제 이력은 1994년 한겨레신문에서 시작했다. ‘한겨레논단’에 격주로 세 달간 쓴 게 일간지 칼럼니스트 데뷔였다"면서 "그 후 동아, 중앙, 조선, 경향 등 여러 신문에 칼럼을 계속 썼으며 2012년부터는 조선에 ‘윤평중 칼럼’을 연재해 왔다. 2014년~2021년엔 KBS 1TV 해설위원으로 칼럼을 썼다. 근 30년 쉬지 않고 시사 칼럼을 써온 셈"이라고 칼럼니스트로서 이력을 회고했다.

그는 "저는 사실과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균형감과 콘텐츠가 있는 칼럼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제 졸문(拙文)을 읽어주신 독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칼럼을 잠시 쉬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글쓰기의 부담은 세상의 모든 문필가에게 천형(天刑)과도 같은 것이지만 제게도 일종의 ‘번아웃’이 온 것"이라며 "‘절필(絶筆)’의 순간이 온 건 아니지만 글의 콘텐츠를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재충전할 때라는 게 제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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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2010년부터 사용해 온 페이스북엔 가끔 이런저런 상념을 올리겠다"면서 "아래 글은 대학 정년퇴임 직전인 2021년 6월에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신문칼럼 글쓰기’와 관련된 제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다시 올린다"고 {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의 변론(辯論)}이라는 제목의 글을 공유했다.

윤 교수는 이 글에서 "두 지식인(고종석 선생과 권혁범 교수)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행보가운데 조선일보 기고행위를 강하게 비난했다. 내가 ‘극우신문인 조선일보의 사실왜곡과 선전선동의 미화원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비판"이라며 "나는 보수지가 됐건 진보지가 됐건 특정 매체를 악으로 여기는 선정적 행태에 대해 그 당시에도 결연히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한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윤 교수는 "내가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적 처신때문에 온전한 지식인에 미달한다'고 고 선생은 주장한다"며 "내 스스로 온전한 지식인이라고 여긴 적이 없으니 ‘조선과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자’라는 게 그의 비판의 핵심인 셈"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나는 칼럼니스트 데뷔를 94년도에 한겨레신문에서 했다. 당시 한겨레신문 얼굴 칼럼이던 ‘한겨레논단’에 박원순 변호사와 격주로 3개월을 썼다"면서 "그땐 고 선생도 한겨레에 있었을 땐데 고 선생 논리대로라면, 내가 한겨레신문과 ‘탐욕스럽게 결탁’하면서 칼럼니스트로 데뷔한 것이 된다"고 고종석 선생의 주장을 반박했다.

(윤평중 교수/윤평중 SNS 캡처)


윤 교수는 "권혁범 교수의 비판은 온건하지만 과거의 안티조선 노선을 단순 반복하고 있다. 권 교수는 특히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민주주의 해체와 가치규범 파괴의 중대성을 경시하고 있다"면서 "그가 요새 윤평중 칼럼에서 느낀다는 '우경화'의 기미는, 내가 문 정권을 계속 강력하게 비판하는 데 대해 그가 느끼는 ‘불편함’에서 나온 것이리라"고 분석했다.

그는 "나는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문화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성역을 두지 않고 비판해왔다"면서 "어느 시대에도 ‘권력과의 불화’는 비판적 지식인의 운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학술서든 신문칼럼이든 궁극적으로 글의 가치는 당파성이 아니라 그 설득력과 정합성, 논리와 매력에 의해 판정된다"며 "어떤 경우에도 나는 특정매체나 그 매체의 독자들에게 영합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홀로 있는 자(者)’다"라고 주장했다.

아래 글은 윤 교수가 2022년 12월 23일 SNS에 올린 
{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의 변론(辯論)}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윤 교수는 "대학 정년퇴임 직전인 2021년 6월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라면서 "신문칼럼 글쓰기와 관련된 제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다시 올린다"고 했다.

-------------   아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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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선일보 칼럼니스트’의 변론(辯論) ~ 윤평중(2021년 6월 20일자 페이스북 게시글 수정)

1. 두 지식인(고종석 선생과 권혁범 교수)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나의 행보가운데 조선일보 기고행위를 강하게 비난했다. 고 선생과 권 교수의 입론은 간단하다. 내가 ‘극우신문인 조선일보의 사실왜곡과 선전선동의 미화원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비판이다. 

2. 고 선생과 권 교수의 주장은 2000년대 초 유행했던 ‘안티조선’ 운동의 선악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당시 ‘안티조선’을 선도한 강준만 교수의 문제제기가 갖는 의의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특정신문 기고를 ‘악(惡)에 부역한 행동’이라는 식으로 재단하는 강 교수의 논리가 오히려 ‘민주다원사회의 공론장을 위협한다’고 반론한 바 있다.

나는 보수지가 됐건 진보지가 됐건 특정 매체를 악으로 여기는 선정적 행태에 대해 그 당시에도 결연히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한다.

3. 고 선생의 비판은 기본을 결여하고 있다. 나는 칼럼니스트이기 이전에 철학자인데 내 칼럼집 정도만 읽고 나를 파악한 듯이 여긴다. (나는 11권의 단독저서와 30여 권의 공저를 썼다).

내가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적 처신때문에 온전한 지식인에 미달한다”고 고 선생은 주장한다. 내 스스로 온전한 지식인이라고 여긴 적이 없으니 ‘조선과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자’라는 게 그의 비판의 핵심인 셈이다.

나는 칼럼니스트 데뷔를 94년도에 한겨레신문에서 했다. 당시 한겨레신문 얼굴 칼럼이던 ‘한겨레논단’에 박원순 변호사와 격주로 3개월을 썼다. 그땐 고 선생도 한겨레에 있었을 땐데 고 선생 논리대로라면, 내가 한겨레신문과 ‘탐욕스럽게 결탁’하면서 칼럼니스트로 데뷔한 것이 된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동아, 중앙, 조선, 경향, 한국, 문화, 세계, 경제지 등 거의 모든 중앙 일간지에 칼럼과 대담을 실어왔는데 이것도 해당 매체들과 ‘결탁’한 것인가? 이 모든 신문에 내가 먼저 글을 싣겠다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언제나 매체 쪽에서 요청해온 데 응했을 뿐이다. 신문칼럼 집필은 내 ‘철학적 실천’의 한 방식이었으며 나는 매체와 상관없이 언제나 ‘나의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4. 조선일보는 2012년부터 내게 ‘윤평중 칼럼’이라는 고정 꼭지를 주었다. 3주에 한번 쓰는 이 칼럼에서 나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온전한 집필의 자유와 권리를 누린다. 윤평중 칼럼의 내용과 표현을 두고 조선일보와 갈등했을 때도 있었으나 나는 한 번도 내 칼럼을 두고 양보한 적이 없다. 윤평중 칼럼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조선일보 애독자들도 많다. 나를 두고 ‘빨갱이’라는 비난도 댓글엔 넘쳐난다.

5. 고 선생 말대로 내가 “조선일보와 탐욕스럽게 결탁한 기회주의자”라면 내가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조선일보에 윤평중 칼럼을 쓰기 시작한 2012년 이래 나는 진보신문을 포함해 숱한 신문사들의 고정칼럼 집필 요청을 일관되게 사양해왔다. 난 그걸 겹치기 출연을 고사한 최소한의 ‘상도의’(商道義)로 여겼다. 다른 신문들엔 윤평중 칼럼과 겹치지 않는 대담·특별기고·주간지나 월간지 원고청탁에만 응했다.

그런데 10년 넘게 지속된 이런 나름의 ‘절제’는 결과적으로 나를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윤평중’으로 제한하는 사회적 효과를 낳게 된다. 극단적 진영대립이 사회적 양식(良識)과 균형감각을 초토화한 한국의 야만적 풍토에서 특정 진영에 ‘자동적으로’ 귀속돼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진영귀속 효과는 ‘철학자 윤평중’의 학술작업에 대한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느낀다(물론 이건 나의 오해일 수도 있다). 지식사회와 (철)학계의 도덕적·학문적 헤게모니는 대부분 진보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목은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고 기실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학술서든 신문칼럼이든 궁극적으로 글의 가치는 당파성이 아니라 그 설득력과 정합성, 논리와 매력에 의해 판정되기 때문이다.

6. 권혁범 교수의 비판은 온건하지만 과거의 안티조선 노선을 단순 반복하고 있다. 권 교수는 특히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민주주의 해체와 가치규범 파괴의 중대성을 경시하고 있다. 그가 요새 윤평중 칼럼에서 느낀다는 “우경화”의 기미는, 내가 문 정권을 계속 강력하게 비판하는 데 대해 그가 느끼는 ‘불편함’에서 나온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문화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성역을 두지 않고 비판해왔다. 어느 시대에도 ‘권력과의 불화’는 비판적 지식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견해를 존중한다. 그와 나 둘 중에 누구 판단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 여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아마 5년 안엔 측정이 가능할 터이다.

7. 나는 1994년 한겨레신문부터 2021년 조선일보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의식하지 않고 칼럼을 써왔다(고 자부한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특정매체나 그 매체의 독자들에게 영합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는 ‘홀로 있는 자(者)’다.

어떤 진영도 편들지 않고 어떤 권력에도 영합하지 않는 태도 덕분에 ‘칼럼니스트로서 장수하고 있다’는 게 내 입장이다. 물론 나의 이런 자기규정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부동(浮動)하는’ 독립지식인으로서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 목표라고 나는 농반진반 얘기하곤 한다. 물론 나는 글의 밀도(密度)와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순간 공론장에서 자진 퇴장할 것이다. 그게 칼럼니스트로서 내 소박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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