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수행비서가 박 전 시장의 사망 하루 전 '수행 일지'를 공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저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수행비서 이승우"라고 소개한 그는 2023년 7월 8일 SNS에 '2020.07.08. 3년 전 오늘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장님의 3주기를 하루 앞두고, 3년 전 오늘, 그 분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날의 기억을 기록 차원에서 적는다"며 장문의 글을 남겼다.
이 씨의 글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 8일 아침 부인 강난희 여사의 배웅을 받으며 시청으로 출근했다. 시청에서 오전 업무를 본 후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일행과 점심을 먹었다. 이어 여의도 국회로 이동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면담했다. 여의도로 이동 중 "요즘 그린벨트 건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많지만, 내가 괜히 고집부리는 게 아니야"라고 혼잣말로 각오를 내비친 사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러 간 이유 중에는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문제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박 전 시장은 이 대표와의 면담 후 시청으로 복귀하던 중 비서실로부터 '급한 보고'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며, 시청에 들어서자마자 시장실에서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로부터 보고를 받았다.{오후 4~4시30분 사이로 추정된다}
박 전 시장은 이날 저녁 민선 5,6기 구청장들과의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이곳에서 분위기가 좋았던지 평소 못 마시는 막걸리를 몇잔 마셔 약간 취기가 오른 듯했다.
구청장 모임을 마치고 아산병원으로 친구의 모친상 조문을 가면서 임순영 젠더특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전 시장은 이 전화에서 "아까 했던 말이 무엇이냐. 내가 정신이 없어 아까 제대로 못 들었다"며 '성추행 고소사건'의 내막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앞서 시장실에서 젠더특보가 첫 보고를 했을 때는 당황하여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읽힌다.
박 전 시장이 젠더특보와 통화하면서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박 전 시장의 대화 내용으로 상대방인 젠더특보의 대화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나를 고소했다고?”
“아니 그 사람이 나한테 왜?”
“아니야 그럴게(그런거?) 없어요.”
“누가 그 사람이랑 같이 고소를 해? 이미경이? 고미경이? 아니야 그 사람들 내 평생 동지야.”
“지금 생각나는 건 전혀 없는데, 일단 혹시 모르니 휴대폰을 한 번 볼게요.”
“이따 저녁에 공관으로 올 수 있어요? 민OO씨랑 같이?”
“이승우씨, 우리 다음 일정이 몇 시지?” (공관에서 11시쯤 보고가 있습니다)
“그 일정을 조금 당겨줘요.” (네 알겠습니다.)
“열한시쯤 두 사람 같이 공관으로 와 줘요. 나도 한 번 더 살펴 볼게요.”
박 전 시장은 조문을 마친 후 공관으로 이동했다. 밤 11시 전에 공관에 도착한 박 전 시장은 수행 비서 이 씨에게 "어서 가서 푹 쉬고 우리 아침에 보자"며 집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이 씨의 글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 글로 추론해 볼 때, 박 전 시장은 11시경 공관으로 찾아온 임순영 젠더특보에게 '성추행 고소건'의 내막에 대해 자세히 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은 이 씨가 쓴 글의 전문이다.
<2020.07.08. 3년 전 오늘의 이야기>
저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마지막 수행비서 이승우입니다. 시장님의 3주기를 하루 앞두고, 3년 전 오늘, 그 분과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날의 기억을 기록 차원에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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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매우 맑은 날이었습니다. 7월의 여름 해는 매서웠고, 땀이 비오듯 쏟아져 손수건을 가지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초반이라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았고, 마스크 밑으로 땀을 닦아내는 모습도 많이 보였습니다.
이른 아침 공관으로 출근하니, 강난희 여사님이 집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사님과는 그다지 친분이 없었기에, 꾸벅 인사드리며 시장님을 모시러 왔노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여사님이 “내려오세요, 나가실 때 됐대요.”라고 2층에 계신 시장님을 부르셨습니다. 문 앞에서 대박이(공관에 있던 개)와 눈싸움을 하고 있으니 시장님이 금세 나오셨고, 우리는 시청으로 이동했습니다.
오전에 시청에서 행정적인 업무를 마친 시장님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님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종로구 새문안교회 뒤쪽으로 올라가면 위치한 참치집이었습니다. 4인 규모의 작은 방에서 시장님은 권 대표님 일행과 식사를 하셨고, 저는 의전팀 직원들(늘공)과 홀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칠 때 즈음, 식당 로비에 고OO 당시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께 이동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와 인사를 나눈 뒤, 시장님을 모시고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한강을 건널 때 여의도 둔치공원을 바라보던 시장님은 “도심 속에는 역시 이렇게 녹지가 있어야해. 요즘 그린벨트 건으로 이런저런 얘기가 많지만, 내가 괜히 고집부리는게 아니야.”라고 하셨습니다.
여의도를 찾은 이유는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국회의사당 본관의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에서 두 분의 면담이 있었고, 저는 문 밖에서 당대표실에 계시던 분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면담이 끝난 뒤 그날 시장님의 일정을 보며 ‘시간 딱 맞추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의도에서 시청으로 돌아가던 중, 비서실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급하게 보고드릴 일이 있으니 시장님 복귀를 서둘러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전화를 받을 때 즈음 서소문청사 인근을 지나고 있었기에, 일찍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고 비서실장은 일정이 있어 서소문청사 인근에서 내렸고, 저는 시장님을 모시고 시청으로 서둘러 복귀했습니다.
원래 예정되어 있던 일정은 외부 분들과 시장님의 면담이었고, 미리 시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외부 손님들을 뒤로한 채 시장님은 젠더특보에게 급한 보고를 받으러 시장실로 들어가셨습니다.
다음 외부 일정까지는 시간이 조금 비어있었기에, 저는 치안협력관실에 마련된 휴게공간에서 잠시 눈을 붙였습니다. 잠시 쉬고 난 뒤 저는 저녁 일정을 위해 시장님을 모시고 강북구로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녁 일정은 민선 5,6기 구청장들과 함께하는 식사자리였고, 시장님은 차가 출발하자 5~10분 정도 눈을 붙이셨습니다.
시장님이 깨서 “어디쯤이야?”하고 말을 거시자, 저는 전날 저녁 시장님이 만난 분들의 명단을 메모해서 드렸습니다. 시장님은 “좋아, 이렇게 내가 연락할 사람들을 차에서 주면 내가 연락하기 좋지!”하시고는 그 길지 않은 이동 시간에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식당에 도착해 시장님을 안쪽 방에 모셔드리고, 밖에서 다른 구청장님들의 수행비서들과 식사를 하는데 시장님께 텔레그램이 왔습니다. “자기 지금 어딨어?” 문 앞에 있는 테이블이라고 답을 드리자, 이윽고 “오늘 성장현 구청장 생일이라고 하니까 몰래 가서 케이크 좀 하나 사와요.”라고 답이 왔습니다.
땀을 잔뜩 흘리며 근처의 빵집에서 케이크를 하나 사서 방으로 들어가자, 다른 구청장들은 놀라시고 시장님은 호탕하게 웃으셨습니다. 라이터를 꺼내 초에 불을 붙여드리자, 시장님과 구청장들은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고, 저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평소에 술을 잘 못 드시던 시장님은 그날따라 막걸리를 서너 잔 드셨고,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셔야한다고 말씀드렸을 때에도 “오늘 좋은 날이니까 조금만 더 있자”고 하시며 구청장들과 담소를 나누셨습니다.
식당에서 막 나가려던 때, 시장님을 알아본 시민 두 분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다가왔습니다. 여성분들이셨고, 그들이 팔짱을 끼려 하자 시장님은 팔을 벌려 살짝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사진을 찍은 뒤 아주 잠깐의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식당 1층에 대기 중이던 차에 탔습니다.
시장님은 “아이고 오랜만에 막걸리를 몇 잔 먹었더니 술기운이 올라오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운전을 맡은 주임께 부탁드려 차를 세우고 편의점으로 뛰어갔습니다. 한 병에 만 원쯤 하던 비싼 건강음료를 사서 차에 탔고, 뚜껑을 열어 뒷자리의 시장님께 건넸습니다.
시장님은 “아니 이게 뭐야. 사람들이 다 나한테 일만 시키는데, 이런 거 챙겨주는건 자기밖에 없어~”하시고는 병에 든 음료를 한번에 들이키셨습니다. 물론 제가 듣기 좋으라고 칭찬하신 말이었겠지만, 요즘 많이 피곤하신가 싶어 걱정이 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친구 분의 모친상 장례식장에 조문을 하기 위해 아산병원으로 향하던 중, 시장님이 갑자기 물으셨습니다.
“우리 젠더특보 이름이 뭐지?”
저는 바로 답했습니다. “임OO 특보입니다.”
“아니 자기는 어떻게 잘 알아?”
“전에 국회에 있을 때 같이 있었어요.”
이런 대화를 나눈 뒤 시장님은 젠더특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연히 상대 쪽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시장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까 했던 말이 뭐에요? 내가 정신이 없어서 아까는 제대로 못 들었는데.”
“누가 나를 고소했다고?”
“아니 그 사람이 나한테 왜?”
“아니야 그럴게(그런거?) 없어요.”
“누가 그 사람이랑 같이 고소를 해? 이미경이? 고미경이? 아니야 그 사람들 내 평생 동지야.”
“지금 생각나는 건 전혀 없는데, 일단 혹시 모르니 휴대폰을 한 번 볼게요.”
“이따 저녁에 공관으로 올 수 있어요? 민OO씨랑 같이?”
“이승우씨, 우리 다음 일정이 몇 시지?” (공관에서 11시쯤 보고가 있습니다)
“그 일정을 조금 당겨줘요.” (네 알겠습니다.)
“열한시쯤 두 사람 같이 공관으로 와 줘요. 나도 한 번 더 살펴 볼게요.”
통화를 마친 시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셨습니다. 한 쪽에서 들리는 말 만 듣고도 심상치 않음을 알았기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 이동 시간만 연신 계산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시장님은 상주와 잠깐의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차량에 탑승해서 공관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이동하시며 “허 참.” “이상하네. 등의 말을 한번씩 읊조리신 것 외에는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공관에 도착한 뒤, 시장님께 여쭤봤습니다.
“시장님,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보이시는데, 제가 공관에서 자고 같이 있을까요?”
시장님이 답하셨습니다.
“자기, 지금 몇 시야?”
“지금 11시 다 되어가죠.”
“자기 몇 시에 나왔어?”
“아침 다섯 시에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조금 자는 사람 얼마 안 되는데, 그중 하나가 당신이야. 그러니까 어서 가서 푹 쉬고 우리 아침에 봅시다! 나 괜찮으니 걱정 말고.”
그 대화를 끝으로 저는 공관에서 나왔습니다. 문 앞에서 보고를 위해 들어가는 팀과 만나, 시장님 오늘 컨디션 안 좋으시니 짧게 하시는 게 좋겠다고 전달했습니다. 그게 시장님을 보는 마지막 순간일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음날인 7월 9일 아침, 저는 다섯 시 즈음 준비를 마치고 자취방에서 나서고 있었습니다. 그 때 비서실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시장님께서 몸이 안 좋으시니까 일단 시청으로 나오라고 말이죠.
시장님께 텔레그램을 보냈습니다. ‘시장님, 어디 편찮으세요? 공관으로 갈까요?’
시장님께 답장이 왔습니다. ‘아냐, 조금 피곤해서 그러니까 점심 일정부터 만납시다.’
그 말만 듣고 저는 시청에서 오전 내내 대기했습니다. 저도 막연한 불안함이 계속 있었기에, 비서실 누군가에게 “혹시 시장님 코로나 걸리신거에요? 어차피 시장님 걸리셨으면 저도 걸리는 거니까 제가 가 있을게요.”라고 말 했지만, 그는 그냥 대기하고 있으라고 저를 만류했습니다.
점심 즈음 시장님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고 대기하고 있는데, 누군가 제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일단 집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집으로 가는 1호선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속보를 봤습니다. 시장님께서 실종되셨다는 보도였습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그 시간부터 몇 시간을 연신 담배만 피며 뉴스를 봤습니다. 밤 12시 즈음 시장님이 발견되어 서울대병원으로 이동예정이라는 보도를 보자마자 울면서 택시를 타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했고, 그 뒤로는 제 주변 분들이 아는 대로의 시간들을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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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씩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왜 아직까지도 그렇게 지내느냐고. 언제까지 시장님 일을 할 생각이냐고. 여러 가지 이유와 생각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건,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인 2020년 7월 8일 저녁, 저는 시장님의 입에서 “아니야. 그럴게 없어.”라는 말을 육성으로 들었다는 것입니다.
시장님의 과를 입증하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증거가 나온다면, 저 역시 시장님의 과에 대해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밝혀진 것도 없는 상태로 그를 향해 쏟아지는 세상의 온갖 비난과 욕설과 조롱을 지금은 참기 어렵습니다.
서울시의 공식 직원이었던 적도 없고, 시장님을 모신 기간은 고작 2년 반 정도로 다른 분들에 비해 무척 짧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나름대로 그분께 받은 은혜와 마음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3주기를 하루 앞두고 적는 그날의 기억이고, 관련된 상황을 보고 들은 관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남기는 증언이기도 합니다. 지난 3년간 하루도 시장님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부디 그 분이 다시 자랑스러운 우리의 서울시장으로 남으실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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