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내가 아끼는 물컵이 사라져서 찾았더니 아내가 깼다고...

polplaza 2023. 7. 3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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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밥을 먹고 물을 마시기 위해 머그컵을 찾았다. 내가 평소 놓아두던 자리에 컵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설거지를 막 끝낸 터라 싱크대 옆에 쌓아둔 그릇 더미 쪽을 살펴보았다. 내가 사용하는 머그컵은 검정색이라 쉽게 눈에 띈다. 그런데 이러 저리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아내가 주방 쪽으로 오기에 물었다.
"혹시 내가 쓰는 검정색 물컵 못봤나?"
아내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 설거지하다가 깨져서 버렸어." 그리고는 "미안해!"라며 정말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나는 전혀 화를 내지 않고 "괜찮다"며 "어디가 깨졌는데?"하고 물었다. 아내는 "그릇끼리 부딪혀서 손잡이가 떨어졌다"고 했다. 

나는 "그거 붙여서 쓰면 되는데"하면서 재사용할 뜻을 내비쳤다. 사기 그릇이나 유리 등에 사용하는 강력 접착 본드를 사서 붙이면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아내는 "컵 많으니까 다른 것으로 사용하지"라고 했다.

이 때, 컵에 집착하느라 아주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아, 당신. 다친 데는 없어?"

설거지하다 사기 그릇이 깨지면 손을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 아내가 "설거지하다 컵을 깼다"고 말했을 때 즉시 물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다행히 다친데가 없다니 안도가 됐다.

따지고 보면, 아내는 내가 설거지하면서 자기가 아끼는 네모 접시를 깼다고 "얼마나 귀한 그릇인데 조심하지 않고 깼다"며 내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한 말이 "그릇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런 경험을 되살려 이번에 아내에게 "다친데는 없느냐?"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물컵으로 사용하던 검정색 머그 컵은 흰색 머그컵과 함께 2개가 세트였다. 남아있는그래서 흰색 머그컵을 사용하려고 봤더니 전기밥솥 옆에 놓여있었다. 그 컵엔 물과 밥주걱이 담겨져 있었다. 당장 물컵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에게 "이제 나는 어떤 컵을 사용하면 좋으냐?"고 물었다. 집에 아들과 딸이 있어서 각자 컵을 사용한다. 잘못 사용하면. 특히 딸 컵을 사용했다간 큰 일 날 수도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런 경험이 있어서 가능하면 물어보고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내는 컵을 놓아둔 곳을 가리키며 "여기서 하나 골라 사용하라"고 했다. 약간의 선 그림과 알 수 없는 글이 적힌 흰색 머그컵이 마음에 들어서 "이거 사용해도 돼?"하고 물었다. 아내는 "그거, 딸이 만든 거야"라고 했다. 한두 달 전에 디자인 배운다고 학원에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때 만들었던 것 같았다.


(딸이 만든 머그컵)


이 때 거실에 있던 딸이 나와 아내가 나눈 대화를 듣고는 다가왔다. 딸은 "그 거는 글자가 거꾸로 나온 거야. 본래 1개를 만드는데 글자가 거꾸로 나와서, 글자가 바로 나온 거량 2개 만들었어"라고 했다. 글자가 바로 새겨진 머그컵은 딸이 사용하는듯했다. 내가 사용해도 되는지 물어본 머그컵은 글자가 거꾸로 새겨져서 '실패한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글자가 희미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약간 지워진 듯한 글자와 아래 위로 움직이는 선이 그려진 이 컵이 맘에 들었다. 나는 "이런 디자인으로 컵을 만들어서 온라인에서 팔아보는 건 어때?"라고 딸에게 화답했으나 딸은 가타 부타 대답이 없었다. 대신 카톡으로 컵에 들어간 영어문장을 보내줬다. 그 문장은 아래와 같다.

"If you could just ravel out into time. That would be nice. It would be nice if you could just ravel out into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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