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최전방 군대 전역기념품... 추억의 '총칼 든 액자'

polplaza 2024. 1. 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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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다가 특별한 사진을 발견했다. 전역 때 받은 전역 기념품 사진이다.

액자 오른쪽에 큰 시계가 있고, 왼쪽에 온도계가 들어있다. 액자 가운데는 단검과 M16 소총이 끝을 맞대고 45도 각도로 세워져 있다. 단검과 총의 모양을 본 뜬 모조품이다. 그 사이에 부대 마크와 독수리, 그리고 전역 기념품을 만든 후배들의 이름과 전역을 축하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액자에 들어있는 군대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던 GOP 근무 사진을 끼워 넣은 것이다. 하교대 동기인 박신교(맨 왼쪽)  분대장 과 후배 노태철(왼쪽에서 3번째) 분대장이다. 왼쪽에서 2번째, 어깨에서 내려온 흰색 띠를 매고 있는 사람이 소대장이다. 박 소위 였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는 군대 체질에 맞지 않을 정도로 성격이 꽤 좋은 분이었다. 내가 소대 선임 분대장이었으므로, 가끔 마찰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소대장은 늘 너그럽게 넘어갔다.

(후배 분대장들이 해준 '전역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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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전역기념품은 얼마 전까지도 시골에 있었다. 85년 전역하면서 고향으로 가져가 부모님이 주무시던 큰 방의 벽에 걸어두었다. 지난 201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까지도 이 액자는 그대로 걸려 있었다. 나는 명절 때나 제사 때 시골에 가면, 큰 방에 걸려 있는 이 액자를 반드시 보곤 했다.

그 이유는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시계 소리가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특히 쥐 죽은 듯이 세상이 잠든 시골의 밤, 액자 속의 시계 소리는 너무나 컸다. "채 칵, 채 칵!" 하며 초침 돌아가는 소리는 전역기념 액자의 존재를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고향에 갈 때마다 전역기념 액자를 보고 느끼면서, 한편으로 군대의 추억을 반추하곤 했다.

한 번은 어머니가 말씀 하기를, "외손자가 와서 저기 액자에 들어있는 총을 갖고 싶다며 할머니가 꺼내 달라고 해서 달래느라고 혼났다"고 하셨다. 사내 아이들은 총이나 자동차 등 장남감을 보면 갖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 같다.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벽에 걸려있는 액자를 알아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총을 꺼내 달라고 했다니, '참 대단한 녀석이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양보하거나 포기하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가 잠시라도 마음고생을 하셨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액자가 어느 날 자리를 잃고 말았다.

2021년 연초 추운 겨울날 옆집 대문에서 불이 나 우리 집으로 옮겨 붙었다. 이 화재로 아래 채에 붙어있던 창고와 사랑방이 다 타 버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웃집 할아버지가 대문 옆에 있는 마굿간에 매어 놓은 소를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전기 난로를 피워 놓았다고 했다. 아마 이 난로에서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한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 나의 액자가 걸려있던 큰 방이 있는 본채는 가까스로 화마를 피했다. 본채는 할아버지가 결혼할 때 큰집에서 분가하면서 80~90년 전에 지은 집이었다. 아버지가 부엌을 개조하고, 청마루와 지붕을 고치면서 유지해온 집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동생들이 살았던 그 집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현대식 콘크리트 주택이 들어섰다. 그해 봄부터 여름까지 집을 새로 짓게 된 것이다.

(불에 타서 버려진 나무 기둥)


고향 옛집이 이웃집 화재로 불 타고, 본채가 헐리면서 모형 단검과 총이 장식된 전역 기념품은 제자리를 잃어버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한몸 간수하기도 힘들어 아들의 전역 액자를 챙길 여유가 없다. 주인공도 없고, 지켜줄 이도 없는 주택에서 전역 액자는 미아가 된 모양이다. 명절과 제사 때 시골에 가는데 거실이나 방에서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찍어둔 사진만 핸드폰에 남았을 뿐이다. 

80년대 우리 부대에서는 전역하면 후배들이 전역 기념품을 해주었다. 주로 후배 병사들의 글과 그림이 담긴 추억록을 많이 만들었다. 당시 군대는 이런 게 유행이기도 하였는데, 요즘 군대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세월이 지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살아있는 이에겐 그것이 나쁘든 좋든 기억으로 살아나고, 간혹 추억으로 남는다.


[전역 기념품에 쓰여있는 글]

피와 땀으로 얼룩진 삼개성상!
눈, 비, 찬이슬 마다 않고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대한 남아의 최선봉장이셨던 선배님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1985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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