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추억의 사진... GOP에서 야식 먹는 시간

polplaza 2024. 1. 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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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없었다면 기억할 수 없는 모습이다.

군대 사진을 정리하다 나온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전투복을 입은 군인이 양손으로 빵 1개를 들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앞을 응시하고 있다. 그 앞에는 우유가 몇 개 놓여있지만, 1개를 제외하곤 손을 되면 안 된다. 다른 소대원들의 몫이다. GOP에서 야간 근무를 서는 대원들에게 야식으로 할당된 간식이다. 1인당 빵 1개와 우유 1개가 매일 야식 배급량이었다.

사진의 모습으로 짐작하건대, 시기는 GOP 근무를 했던 1985년 어느 여름날 동트기 전 새벽으로 보인다. 휴전선을 따라 이어진 철책선에서 밤새 경계근무를 선 후, 임무 교대를 하고 소초(소대 단위 초소)에 복귀한 상황이다. 철모와 총기를 내무반에 반납하고, 인근 취사장에서 야식을 먹는 순간이다. 군용 런닝구가 다 보일 정도로 전투복 상의의 단추를 모두 풀어헤친 상태는, 밤새 근무로 지친듯한 인상을 준다. 한편으로, 밤새 경계임무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 같기도 하다.

분대장
계급장이 반쯤 보이는 걸 보면, 이 사진은 부사수가 찍은 것이다. 철책 근무는 2인 1조로, 사수(선임)와 부사수(후임)로 구성된다. 나의 부사수는 이등병이거나 일등병이었다. 당시 일·이병들의 모습이 한명, 두명 스쳐 지나간다. 근무 때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부사수가 바뀌기 때문에 누가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진의 구도가 거의 4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 왼쪽 검은색 부분은 야간에 불빛이 새나가기 않도록 야간등제를 한 창문인데,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사진을 찍을 줄 모르거나, 아니면 사진을 제법 알고 찍은 것일 수도 있겠다. 사진에 찍힌 나는 이 사진을 보기 전까지 구도가 어떻게 잡혔는지 알지 못했다. 앵글을 잡은 사람은 부사수였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부사수만 그 순간의 각도를 알 수 있다. 그 친구는 나를 왜 이렇게 비스듬히 기울여서 찍은 것일까?

부사수 역시, 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피곤했을 것이다. 세상이 귀찮은 상태에서 별 생각 없이 찍은 것일까. 내가 손에 든 빵을 보면, 봉지를 막 뜯어내고 먹기 직전이다. 부사수도 나와 같이 우유와 빵을 먹을 참이었을 것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소초에 돌아와 촐촐한 배를 빨리 채워야 하는데, 사수가 사진 하나 찍어 달라고 해서 짜증이 난 것일까. 언행으로는 감히 사수에게 대들 수 없었지만, 사진을 기울여 찍음으로써 내심 불만을 나타낸 것일까. 

(야갼 경계근무 후 GOP에서 야식 먹는 필자)


그럴 리는 절대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그 때의 부사수를 믿는다. 불만의 표시로 비스듬히 찍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나름대로 자신의 구도에 맞춰 신경 써서 찍었을 것이다. 굳이 추정하자면, 탁자 위에 있는 군용 보급품인 '서울우유멸균유'라는 우유곽을 전부 앵글에 담으려고 하다보니 앵글이 기울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부사수들의 속마음은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모두 내 말을 잘 따라준 것은 사실이다. 나는 부사수들과 항상 좋게 지냈다고 자부한다. 그들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듣고 군 생활을 잘하도록 안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이 사진에 대해 나는 한번도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다. 
GOP 근무를 마치고 훼바로 철수해 그해 연말 전역하는 날까지 이 사진을 문제삼은 기억이 없다. 그 때 부사수는 아마도 성심껏 애정을 가지고 찍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부사수의 사진도 한장 찍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부사수가 사양했을 수도 있다. 막연한 추측일 뿐, 이 사진 외에 아무 것도 뚜렷한 것은 없다.

무려 39년 전이나 지금이나 확실한 것은 사진 속의 장면이다. 나무 탁자 위에 놓인 우유곽에서 우유 한팩을 꺼내 앞에 놓고, 접이식 철제의자에 앉아 빵을 양손으로 들고 있는 군인의 모습이다. 바로 20대 청춘 시절, GOP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던 나의 모습이다.

그 때, GOP에서 필자와 함께 근무했던 일·이병들과 상병, 병장들, 그리고 분대장들과 선임하사, 소대장, 중대장 등 모두에게 늘 행운과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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