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시골시장에서 있었던 일.. "메주에 곰팡이가 있네요"

polplaza 2024. 1. 2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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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버지 기제사가 있어서 시골에 다녀왔다. 돌아가신지 벌써 7년이 흘렀다. 아내가 작은 액자에 넣어둔 가족 사진을 보면, 아직도 아버지가 살아계신 듯하다. 사진 속에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항상 계신다. 이 사진은 통일동산으로 나들이를 갔을 때 내가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에는 우리 가족 중 나만 빠져있기 때문에 내가 찍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낸 다음날, 귀경 길에 읍내 시장에 들렀다. 횟감을 살까해서였다. 겨울은 방어철이라고 해서 방어가 횟감으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작년에 처음 알게 됐다. 횟집이 늘어선 어시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골 가는 날, 회를 샀던 가게 앞을 지나가자 주인이 알아봤다. 주인은 "오늘 아침에 대방어가 들어왔다"면서 방어를 추천했다. 나는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주인은 "대방어 한마리는 보통 6~7인분으로 2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한마리를 다 사갈 형편은 아니었다. 나는 3인분 정도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눠서 판다"고도 했다. 그래서 7만원어치를 주문했다. "방어는 30분 이상 피를 빼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차표를 끊은 귀경 고속버스 시간이 1시간 이상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횟집에서 회를 장만하는 동안, 시장을 둘러보기 위해 가게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군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이다. 생선회를 뜨는 횟집뿐만 아니라, 건어물 시장, 과일 시장, 야채 시장, 떡집, 방앗간, 식당 등이 일정하게 들어서 있다.

이날은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가게들이 입주한 시장 건물 밖의 인도에도 시골 할머니들이 줄지어서 고구마, 칡, 버섯, 곶감 등 농산물을 펼쳐 놓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날이 5일장이 서는 장날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장날 치고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설날이 가까워지는 다음 장날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국화빵을 파는 가게도 있고, 냉동 명태를 잘라주면서 파는 가게도 있고, 말린 메기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어릴 때 본 메주를 파는 가게였다. 메주를 실물로 본 것은 실로 수십년 만이었다. 

(시장에 나온 메주)


메주 가게를 지나쳤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발길을 돌렸다. 메주 가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사람들이 메주가 담긴 바구니 주변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핸드폰으로 메주 사진만 찍고 다른 곳을 둘러보러 갈 참이었다. 그때, 먼저 와 있던 50대 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메주에 곰팡이가 피어 있어서 안 되겠어요."라면서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메주에 곰팡이가 있어서 안 되겠다'라니... 이 말은 들은 나는 "메주에 곰팡이가 피어야 메주죠!"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내가 뜻밖의 말을 하자, 아주머니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한번 더 "메주에 곰팡이가 피는 것이 당연하죠. 곰팡이가 안피면 메주가 아닙니다."라고 그냥 웃었다. 오지랖인가 싶기도 했지만, 전통 음식에 대한 상식은 바르게 알게해야지 싶었다.

그냥 가려던 아주머니는 발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섰다. 가게 아저씨에게 "메주가 이렇게 곰팡이가 피어도 간장을 담그도 되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집에서 된장하고 간장을 담그려고 메주를 사러고 나왔다"면서 "메주에 곰팡이가 피는 줄 몰랐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몇 개나 사가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서너 개쯤 사야하지 않을까요?"라고 조언했다. 가게 아저씨는 "양을 얼마나 하실 거냐?"고 물어봤다. 나는 사진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든 메주 사진을 찍은 후, 자리를 떴다.

(어물전 시장)
(말린 메기)


그 아주머니가 메주를 샀는지, 샀다면 몇 개를 사갔는지 알지 못한다. 사고 파는 일은 아주머니와 가게 주인이 알아서 할 일이지, 내가 더이상 관여할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메주에 곰팡이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어릴 적에 사랑채 마루 위에 볕짚으로 묶어 주렁주렁 매달아둔 메주를 본 기억이 있다. 심지어는 방안에 걸어두기도 했다. 메주에 조금씩 틈이 생겨 갈라지고, 그 틈 사이에도 흰색, 검은색 곰팜이가 생겼다. 그 때는 메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든다는 사실을 몰랐다. 부모님이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메주는 그냥 메주일 뿐이었다.

(주문한 회를 포장하는 횟집 주인)


시장 이곳 저곳을 둘러본 후, 회를 주문한 가게로 돌아왔다. 아저씨가 손질 중이었다. 기다리는 사이, 안주인이 삶은 땅콩과 귤을 간식으로 내놓았다. '봉다리 커피'도 한 컵 마시면서 여유를 가졌다. 장모이자 실제 가게 주인인 할머니가 "회 준비가 다됐다"고 알려주었다. 횟값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장거리 이동이라, 노부부가 스치로폴 박스에 얼음을 넣어 포장을 해주었다.

스치로폴 박스를 들고 도보로 약 10분 거리인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귀경하여 밤 늦게 저녁을 겸해 방어회를 먹게 됐다. 이동 시간 동안 충분히 숙성이 된 듯 했다. 박스 안에 동봉된 초장에 찍어먹으니 육질이 부드럽고 맛있었다. 봄에는 도다리,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방어라는 말이 실감났다.

(방어회)

 

(장날에 장터 나온 상인들과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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