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고 장기표 선생의 49재 마지막 재에 다녀왔다. 식순 중에 살풀이 춤과 '어화너' 노래가 들어 있었다. 고인의 영가를 극락으로 보내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을 고하는 의식이었다. 특히 홍승희 씨가 상기된 얼굴로 구슬프게 어화너를 부를 때는 옛날 생각이 절로 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여꾼들이 상여를 매고 집을 나서면서, 들판을 지나고, 산으로 올라갈 때, 상여를 이끄는 소리꾼과 상여를 맨 상여꾼들이 망자의 혼을 달래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49재는 끝났지만, 어화너의 구슬픈 곡조와 감정이입에 충실했던 홍 씨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상여를 매고 마을을 벗어나던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이 반추됐다. '어화너'에 대해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1997년 발매 표시가 있는 CD가 나왔다. 김영임 씨가 부른 회심곡(回心曲) 전곡을 담은 것으로 표기돼 있었다.
수록된 곡은 1. 회심곡(인생의 길) 2.회심곡(부모님 은혜) 3. 회심곡(몇 년이나 산다고) 4. 회심곡(죽음의 길) 5. 회심곡(저승사자) 6. 회심곡(풍도지옥) 7. 회심곡(극락왕생) 8. 가야지(김한영 작사, 박범훈 작곡) 9. 어화너(반영규 작사, 박범훈 작곡) 10. 탑돌이(광덕스님 작사, 박범훈 작곡) 등 총 10곡이었다. 앞의 7곡은 회심곡이라고 붙였는데, 나머지 3곡은 회심곡이라고 붙이지 않은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어화너를 비롯해 나머지 3곡도 불교 음악이라는 점에서, 큰 틀에서 회심곡으로 분류하는 듯했다.
김영임 씨가 부른 어화너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유튜브에서 검색을 해봤다. 김영임 씨의 노래와 비구니인 보현스님이 부른 노래가 나왔다. 다른 사람이 부른 것도 있었으나 어쩌다가 한번 부른 것으로 보였다. 유튜브에 올라있는 '어화너' 노래는 많지 않아서 다 들어보았다. 김영임 씨의 어화너 소리는 공중을 뚫고 나가듯이 맑고 청아했다. 보현스님의 소리도 비슷했다. 국악인이 부른 어화너도 있었는데, 느낌이 좀 달랐다. 불교음악은 불가에 몸을 담고 있거나 불가를 이해하는 사람이 부르는 것이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런데 김영임 씨와 보현 스님은 후렴구를 다른 사람들이 합창으로 불렀다. 소리꾼이 혼자서 먼저 소리를 내면, 무거운 상여를 맨 상여꾼들이 발의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함께 후렴을 토해내는 형식을 닮았다. 반면, 홍승희 씨는 혼자서 노래를 하고, 후렴도 혼자서 했다. 그게 큰 차이였다. 또 하나는 두 사람의 노래에는 망자를 보내는 가족들의 슬픔이 크게 녹아있지 않은 듯했다. 유족들의 슬픔보다는 망자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노래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홍 씨는 망자를 붙잡고 싶은 유족들의 애절한 아픔을 담아서 고인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을 노래한 것 같다. 순전히 나의 주관이고 판단일 뿐이다.
한편 어화너 가사는 아래와 같다.
어화 어화 어화너 어화 어화 어화너(후렴)
북망산천이 머다더니
집 나서니 북망일세
(후렴)
뒤돌아 보니 지난 세월
한낮의 꿈같구나
(후렴)
울지를 마라 두견새야
빈손으로 가는 길에
(후렴)
지은 것은 악연뿐이라
뉘우친들 무엇하리
(후렴)
벗님네들아 살아생전
후회할 일 하지마소
(후렴)
정만 두고 가는 님은
언제 다시 만날 건가
(후렴)
우우우~ 우우우~ 우우우~
어제까지 울 너머로
세상 얘기 하던 님이
자고 나니 허망하게
베옷 입고 꽃신 신고
명정청포 앞세워
저승길이 웬 말이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북망산 머나먼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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