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봉은사에서 고 장기표 선생의 49재가 열렸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지막 자리에 많은 추모객들이 몰렸다. 의식이 끝나자 모두 법당 밖으로 빠져나가는 와중에 앉았던 방석을 정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김문수 노동부장관이었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그냥 나가면 사찰 불자들이 정리할 텐데, 이런 일까지 신경 쓰는 걸 보고 내심 놀랐다. 권위의식 없이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이웃 형님 같아서다. 평소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김문수 장관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 선생에 대해 "제가 대학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존경하는 민주화 운동의 스승이셨다"고 평했다. 김 장관은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고, 발인식과 안장식, 49재 초재와 막재에 모두 참석하는 등 고인의 마지막길을 정성을 다해 배웅했다.
이런 김 장관에 대해 장기표 선생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는 생전에 신문명정책연구원 관계자들이 모인 사석에서 "김문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김 장관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노동부 장관에 임명됐을 때다. 당시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 장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부당하다"며 이른바 '광화문 태극기 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한 전력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선생은 김문수 장관의 장점을 강조하며 무한한 성원을 보냈다.
일찍이 장 선생은 한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김문수 장관을 평한 적이 있다. 장 선생은 이 글에서 "내가 김문수를 처음 발견한 건 1970년 봄 사회법학회 회원을 모집하러 서울대 교양과정부에 갔을 때였다"며 "그날 학생집회가 있었는데 마침 김문수가 발언하고 있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1학년 학생인데도 '학교에 들어오는 길 양쪽을 보면 야유회를 알리는 벽보만 잔뜩 붙었는데, 미팅하고 야유회 가려고 대학에 들어왔느냐? 우리 학생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고 '대학 신입생' 김문수를 처음 본 인상을 소개했다.
"그 뒤 그는 노동현장에 뛰어 들어 노동운동에 헌신했는데, 당시로서는 대단히 모범적인 운동가의 자세였다. 김문수의 헌신성과 근면성을 정말 대단했다"며 "한 예로 쌍문동 이소선 어머니 집에서 청계조합원들과 새벽까지 토론하다 잠을 자는 경우 이부자리가 부족해 이불을 덮지 못한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그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무언가 덮고 자게 했다. 청소 설거지 등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라고 장 선생은 회고했다. 이어 "그와 함께 지내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의 헌신성과 근면성에 감복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결국 김문수는 심상정 등과 함께 사회주의 지향성의 노동자정치조직인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결성을 주도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며 "내가 김문수에게 사회주의 노선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김문수는 나의 비판에 반발하면서 '역사적으로 학생과 노동자들의 주장이 틀려본 적이 있느냐'고 나를 엄청나게 비난했다"고 밝혀, 한 때 두 사람 사이에 갈등과 논쟁이 심각했음을 털어놨다.
장 선생은 "이념문제나 노선문제로 대립해서 심하게 논쟁하다 보면 인간관계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도, 김문수와 나는 그렇게 격렬하게 다투고서도 상대방을 존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면서 "지금도 그와 나는 정치적 견해가 크게 다르지만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건 전적으로 김문수의 인품이 출중한 때문이지만 그에 대한 나의 존경과 신뢰가 특별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말하자면, '인간 김문수'의 남 다른 헌신성, 근면성, 정직성 등을 잘 아는 장 선생은 후배인 그를 오히려 존경하고 신뢰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념은 형제와 가족도 적으로 만든다는데, 사람 됨됨이로 이념을 극복한 장 선생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가졌던 장 선생을 존경하는 김문수 장관 역시 정치 노선의 벽을 넘어서서 '인간 장기표'를 존경하는 것이다.
장기표 선생과 김문수 장관처럼 이념이나 노선 차이로 갈등을 빚더라도 서로 신뢰하고 존경하는 막역한 관계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따뜻한 인간애로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누구든지 가능할 수 있다. 이념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더 중시하는 가치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훨씬 훈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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