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서울 파노라마'라는 사진이 걸려있다. 1929년경 북한산 자락에서 오른쪽 남산까지 서울시 전역을 촬영한 희귀한 사진이다. 전시된 사진은 원본이 아니라, 원본 사진을 손질하여 확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사진의 원본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는 그 원본 사진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서울역사박물관에 내건 '서울 파노라마' 사진에 대해 "이 파노라마 사진은 1929년경 서울(경성) 전경을 찍은 것이다. 왼쪽 북한산 자락부터 오른쪽 남산에 이르기까지 사대문 안의 모습을 모두 5장의 사진으로 담아냈다"고 소개했다. 이어서 "당시에 발행된 [일본지리백과사전] 등에 실린 사진으로 원본은 처음 공개되는 것인데, 앨버트 테일러가 취재 등의 목적으로 확보해서 소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즉, 서울시는 이 사진에 대해 앨버트 테일러가 "소장했던 것"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추정된다"고 밝힘으로써 테일러의 소장품이 아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서울시는 이 사진의 출처로 앨버트 테일러를 언급함으로써 어물쩍 진짜 출처를 밝힐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이 의문에 대해 분명히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테일러의 소장품이면 소장품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지, 충분히 확인 가능한 일을 왜 추정이라고 썼을까.
필자는 이 사진의 출처를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위키피디아에 'Keijo grand panorama'라는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다. 'Keijo(케이조)'는 '경성(서울의 옛이름)'의 일본말이다. 누군가가 올린 이 이미지를 확대해 보면,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사진과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의 저작권은 일본 저작권법상 저작권보호가 만료됐다는 설명도 붙어있다.
그런데 필자는 수년 전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서울 전경을 담은 '서울 파노라마' 사진을 '인터넷 이미지'나 '사진'이 아닌 원본을 우연히도, 영광스럽게도 직접 본 적이 있다. 아주 귀한 역사적 사진으로 보여서 몇장의 사진을 찍어두었다(아래 사진 참조).
양쪽 끝 부분은 색이 바래졌으나 선명도는 너무나 뚜렷했다. 왼쪽의 북한산 자락부터 오른쪽 남산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서울 파노라마'와 똑같은 사진이었다. 사진 제목은 오른쪽 하단에 '大京城全景(대경성전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서울을 당시에는 '경성'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속에는 중앙청과 명동성당이 보이고,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조선신궁'을 훤히 볼 수 있다. 이 사진의 촬영 시기를 1929년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단초들이다.
이 사진은 서울시의 설명대로 5장의 사진을 찍어 서로 연결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필자가 본 원본 사진은 파노라마 기법으로 찍은 사진처럼 한 장으로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맨 아래 사진 참조). 이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자료 사진으로 찍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당시 자료집에는 사진이 실려있을지 몰라도, 광복과 6.25 전쟁 등 격동기를 거치면서 당시 인화된 사진의 원본을 여태껏 대를 이어 보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원본 사진의 가로길이만도 1m 60cm가 넘는 대형 사진이기 때문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사진의 원본 출처가 앨버트 테일러로 추정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진위 여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테일러의 유족이 그의 유품 중 일부를 우리나라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그 목록에 이 사진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이라도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대도시로 발전한 서울시가 1920년대 서울시 전경을 담은 희귀 사진의 출처를 명백히 하지 않고 '추정'이라는 말로 초점을 흐리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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