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중학교 김주석 미술 선생님에 대한 추억

polplaza 2021. 4. 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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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중학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크리스마스나 신년 때 손으로 카드를 그려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카드나 새해 연하장을 싸인팬으로 색칠할 때의 즐거웠던 순간은 아직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털 모자를 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이 가득 든 보따리를 멘 모습을 그리던 그 시절, 아련한 추억이다.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의 모습이다.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때는 담임 선생님 한 분이 국어 산수 미술 체육 음악 등 모든 과목을 가르쳤는데, 중학교 때는 그림만 가르치는 미술 전담 선생님이 계셨다.

김주석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미술 시간에 그림에 관한 것 외에는 다른 말씀이 전혀 없었다. 평소 학생들의 태도나 진로 등에 대해 어떤 간섭도, 어떤 지도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사회 과목의 한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숙영낭자전' 같은 고전을 맛깔스럽게 들려주기도 했다. 다음 수업시간이 기다려질 정도로 이야기를 너무 잘해주셨다. 농담도 아주 잘하셨다. 그런데 미술 선생님은 그림 외에는 어떤 농담도, 어떤 얘기도 하지 않았다. 항상 우수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미술 시간에 가끔 학교 밖으로 스케치를 하러 나가곤 했는데, 우리는 좋아했다. 교실에서 하루 종일 수업을 받는 것보다 지금의 4월 같으면 봄 바람도 쐬고, 졸음도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선생님은 언제나 연습장 크기의 두꺼운 스케치북과 두꺼운 검정 싸인펜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리실까'하고 궁금했던 나는 어느 날 선생님의 그림을 볼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의 그림을 어깨 너머로 보려고 하자 얼굴을 돌려 한번 씩 웃으시며 스케치를 계속 하셨다. 몸통이 큰 나무에 잔 가지를 그리고, 음영 처리를 힘차게 하셨다.

교실에서 포스터 그림을 주제로 그릴 때는, 어떤 여학생이 그린 그림을 칭찬하시던 기억도 난다. 포스터 글자에 그림자를 일정한 방향으로 넣었던 그림이었다.

미술 선생님에게 남아 있는 기억은 우수에 젖어있던 모습이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시던 스케치북과 검정 싸인펜으로 스케치한 큰 나무 그림.

중학교를 졸업한 후,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벌써 4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선생님의 소식을 알게 됐다. 선생님은 항일 독립운동가이셨다. 1944년 10대 때 '학우동인회' 사건(반국가단체, 항일운동을 한 혐의로 치안유지법 및 국방보안법 위반)으로 진해 일본군 헌병대에서 친일 일본군 헌병 '시게미쓰' 등에게 심한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이 생애에 그대로 투영되어 삶을 지배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은 살아 생전 대한 독립 후에 시게미쓰가 어디서 어떻게 변신하여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이 풀지 못했던 그 의문을 '신동아'가 취재하여 세상에 공개했다.

(김주석 미술 선생님/ 사진: 신동아)

삼가 고 김주석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 : shindonga.donga.com/3/all/13/103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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