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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이야기] 상병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고 싸움을 걸었을 때

polplaza 2022. 4. 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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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중반,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대학생에다 신체등급이 갑종(1등급)이라고 하사관(현 부사관) 후보로 차출됐다. 지력과 체력이 우수한 장정을 하사관 후보로 뽑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1973년부터 75년까지 훈련소와 보충대에 입소한 장정들은 본의와 상관없이 하사관 후보로 선발될 수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하사관 후보로 뽑혀 여산(전북 익산시의 면소재지)에 있는 육군 제2하사관학교에 입교했다. 이곳의 교육기간은 6개월이었다.

하사관학교, 두번 다시는 가고싶지 않은 곳이었다. 내 평생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때는 그 시절이었다. 그냥 '자살하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 당시 감정은 정말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국방부 시계는 고장이 없었다. 교육 과정 6개월이 꿈처럼 지나갔다. 하사 계급장을 달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복무지는 대구에 소재한 부대의 사령부였다. 이곳에서 작전지원 업무를 할당받았다. 매일 아침 부대장에게 부대 별 상황 체크를 해서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 야간 근무도 없고, 훈련도 없고, 갈구는 사람도 없었다. 하사관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매일 취짐 점호 준비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작대기 2개, 일병 계급을 단 병사 때문이었다. 박영수 일병은 사실 논산훈련소 입소 동기였다. 같은 날 입대했지만, 6개월 후 나는 하사관 신분이 돼서 계급이 그보다 훨씬 높았다. 박 일병이 내무반에서 내 메트리스를 깔고 있을 때 나는 모르는 척 지나칠 수밖에 없없다. 병 고참이나 하사는 군대 서열의 업무 분담에서 메트리스를 깔 군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친구가 맘에 걸려 업무를 마친 후 PX에 종종 데려가 식음료를 사주기도 했다.

한번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왔다. 같은 내무반에서 성질을 부리기로 소문난 김주모라는 상병이었다. '특별히 볼일이 없을 텐데 무슨 일인가' 하고 기다렸다.

김 상병은 나에게 1m 앞까지 다가와서 눈을 부라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 하사, 오늘 나랑 한판 붙자!" 그는 반말 투로 양손으로 손가락지를 끼면서 자신감 있게 도전해 왔다.
나는 침묵했다.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몸싸움을 준비하는 혈기가 불타고 있었다. 평소 나에게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짬밥수는 자기가 많은데, 계급은 내가 높았기 때문이다.

"김 상병!" 하고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 한판 붙자, 붙어야지." 하고 대수롭지 않은듯 응수했다.
"빨리 한판하자~" 김 상병이 위 아래로 눈을 흘기며 재촉했다.

"김 상병! 그런데 말이야, 군대 와서 다치지 않고 집에 가는 것이 우리의 소원 아닌가?"
"...." 김 상병은 대답하지 않았다. 멈칫하는 눈치였다.

"김 상병, 나하고 김 상병하고 싸우면 둘 다 다치겠지. 왜 억지로 싸워서 다치냐고?" 내가 다그치듯 핀잔을 줬다. 평소에도 세상 일에는 시니컬하기 때문에 김 상병의 폭력적 도발에도 냉정했다.

"...." 기세등등하던 김 상병은 갑자기 말이 없었다.
그의 눈에서 혈기가 가라앉고 있었다. 머쓱한 표정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채로 아무말 없이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떴다.

그 후론 그가 제대할 때까지 누구에게든 "한판 붙자"고 싸움을 거는 일을 본 적이 없다.


(출처. 행군의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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