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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전 경제부총리 별세, 향년 94세

polplaza 2022. 6. 2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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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2022년 6월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의료계와 유족 등에 따르면, 고인은 최근 노환으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새벽 타계했다.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명성을 날린 고인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 민선 1기 서울시장, 한나라당 총재 등을 역임하면서 학계와 관계, 정계를 두루 섭렵한 풍운아였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


고인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2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보통학교(강릉중앙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으로 유학가서 2년간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 후 서울의 경기중학교로 편입했다. 1946년 경성경제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49년 서울대학교 상대를 졸업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군에 입대한 그는 1951년부터 1957년까지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부 교관으로 영어를 강의했다. 1957년 대위로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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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그는 보오든대학 경제과를 졸업(1960)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1967)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를 딸 동안 뉴햄프셔대에서 조교수로 재직(1964~1965)하면서 학비를 충당했다. 귀국한 그는 1968년부터 1988년까지 20년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서울대 경제연구소 소장을 겸직했다. 그가 '케인즈 이론'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경제학원론(1974)'은
대학가에 '경제학 바이블'로 통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새로운 학설이 등장하면서, 뒤에 정운찬 전 총리, 진성인 홍익대 교수, 김영식 서울대 교수 등이 차례로 공동저자로 참여해 '조순 경제학원론'에 새생명을 불어넣었다. 정운찬, 좌승희 등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조순학파'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많은 후배들이 배출됐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던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그를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로 발탁했다. 육사 교수시절 생도였던 노태우 대통령과 인연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1992년 한국은행 총재에 취임했으나 중앙은행 독립성 문제로 정권 핵심부와 갈등을 빚다가 1993년 사퇴했다. 이후 이화여대에서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조순 서울시장/1996년)


학계와 관계를 거친 그는 마침내 정치권에도 진출했다. 그의 굵고 흰 눈썹은 '트레이드 마크'였다.
1995년 6월 27일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김재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의 '러브콜'을 받았다. 조순 후보캠프는 대만에서 수입된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에 착안, '서울 포청천 조순'이라는 선전 구호를 만들었다. 짧은 기간 동안 지명도를 높이는데 성공했고, 여당인 민주자유당 정원식 전 총리를 누르고 당선됐다. 시장 재임 중 그동안 정치집회의 주무대였던 서울 여의도광장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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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선 정국을 맞아 고인은 대선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 김대중 씨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반발하여 이탈하지 않고 기존 민주당에 잔류한 소위 '통합민주당'의 대선후보 겸 총재로 선출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역부족을 느낀 그는 그해 11월 신한국당 이회창 총재와 양당 합당을 성사시켰다. 이 총재가 대선후보로, 고인은 통합 한나라당의 초대 총재를 맡아 각기 역할을 분담했다. 1998년 강원도 강릉시을 지역구의 최욱철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자 이곳 보궐선거에 출마해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당중진들에 대해 '공천학살'을 단행하자 이에 반발해 탈당했다. 김윤환 이기택 이수성 김상현 박찬종 신상우 장기표 등 정계 거물급 인사들과 손잡고 민주국민당 창당을 주도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지역구 1석(한승수), 전국구 1석(강숙자)을 얻는데 그쳐 기대밖으로 참패했다. 이로써 고인의 종반 인생의 정치 대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다. 한나라당과 민주국민당의 당명은 고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까지 서울대 사회과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로 있었다.

(조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벽보/1995년)

 

(조순 서울시장 후보 홍보물)

 

(조순 서울시장 후보 홍보물)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캐리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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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공보물)

 

(서울시장 출마 당시 유세하는 당시 조순 후보)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과 악수 나누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1995년)

 

(조순 후보 지원나온 부인 김남희 여사/1995년 6월)

{위 사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조순 선거운동백서}


한편 유족으로 부인 김남희(92) 씨와 강원랜드 대표를 지낸 장남 기송씨를 비롯해 준, 건, 승주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이다. 장지는 선영인 강릉 구정면 학산마을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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