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글은 독일 뮌헨 공항에서 이륙한 서울행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 LH) 기내에서 갑자기 실신한 여성 승객을 신속히 구급한 승무원들의 이야기이다. 실신 승객의 남편은 "승무원들의 빠른 응급 처치와 사후 조치로 가족이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아래는 남편이 쓴 글이다.
2023년 1월 말~2월 초 포르투갈-스페인 패키지 단기(8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첫날은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독일 뮌헨을 경유해 포르투갈 리스본에 도착하여 1박하는 것으로 하루가 갔다. 비행시간으로만 약 16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귀국하는 날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뮌헨 공항을 경유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시간으로 약 14시간 정도 걸렸다. 출발과 도착, 모두 루프트한자(Lufthansa) 항공을 이용했다. 이코노미석인데도 서울-뮌헨 왕복구간의 비행기는 좌석 공간이 넓어 조금 자유로웠다.

귀국하는 날, 뮌헨 공항을 이륙한 지 3시간쯤 지났을 무렵 첫 식사가 제공됐다. 처음 듣는 메뉴를 선택했는데,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후식 음료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식사와 후식이 모두 제공된 후, 기내의 불이 꺼졌다. 내 옆 자리에 앉아있던 젊은 친구는 또 엎드려서 잠에 빠져든 모습이었다. 나는 앉은 자세로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렸다. 슬쩍 통로 건너편에 앉아있던 가족을 바라봤다. 잠을 자는 듯 눈을 감고 있는 듯했다. 나만 잠을 못 자는 것일까.
얼마 후,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옆 아들의 자리를 지나 통로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통로로 나와 한두 걸음을 떼자마자 갑자기 '픽~'하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였다.
기내가 어두워 아무도 눈치챌 수 없었다.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륙한 지 4시간쯤 지난 것 같았다. 한국시간으로 2023년 2월 3일 새벽 4시경이었다. 인천공항 도착 예정시간이 오전 11시 20분이었으므로 무려 7시간 20분 동안 병원 응급실을 찾을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 닥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통로에 쓰러진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 옆에 있던 아들이 아내를 붙잡아 일으켜 세우려고 애썼다. 아내의 얼굴과 어깨를 들면서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기내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아내의 얼굴은 창백해 보였다. 승객 중 누군가가 "사람이 쓰러졌다"고 외쳤다. 검은색 제복을 입은 키 큰 남성 승무원이 다가왔다. 팔다리 양쪽을 들어서 환자를 기내 앞 쪽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아들과 내가 아내의 다리와, 어깨 쪽을 각각 잡고 옮기려 했으나 몸이 축 처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이때 아들이 아내의 등과 다리 쪽을 안아서 번쩍 들었다. 평소 몰랐는데, 군대 갔다 온 아들이 든든해 보였다. 아들은 승무원들의 안내에 따라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 사이에 있는 승무원 좌석으로 아내를 옮겼다.

아내의 양손을 잡아보니 힘이 하나도 없고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손바닥을 주물러 주었다. 여성 승무원 중 한 명이 비닐에 밀봉된 새 산소호흡기를 떼서 아내의 얼굴에 부착했다. 한국인 남성 승무원은 차트를 들고 와서 한국말로 신상을 파악했다. 아내의 이름과 나이를 적었다. 이 승무원은 외국인 여성 승무원에게 혈압 체크기를 가져오라고 하여 혈압을 체크했다. 또 다른 여성 승무원은 피를 뽑는 집게를 가져와서 피를 뽑았다. 외국인 남성 승무원은 뽑은 피를 테스트 종이에 묻혀 검사를 했다. 5~6명의 남녀 승무원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산소호흡기를 단 아내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냐?"고 물었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한고비를 넘긴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됐다. 아내가 산소 호흡기를 만지자 여성 승무원이 호흡기를 떼주었다. 다른 여성 승무원이 캔 콜라를 갖다 주었다. 아내는 한 모금 마시는 둥 마는 둥 했다.
한국인 남성 승무원은 혈압이 정상보다 낮다면서 호흡기를 다시 부착하도록 했다. 그는 새 혈압 측정기를 가져오라고 하여 다시 혈압을 측정했다. 여성 승무원은 두세 번 더 손가락 끝에서 피를 뽑았다. 외국인 남성 승무원이 피검사를 또 진행했다. 외국인 승무원들은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으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마침 한국인 남성 승무원과 소통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급박한 응급조치가 거의 끝났을 무렵, 나는 한국인 승무원에게 "상태가 어떻냐"고 물었다. 그는 "혈압이 많이 떨어졌다가 이제 거의 정상으로 올라왔다"면서 차트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식사를 한 후 계속 앉아 있어서 피가 한 곳으로 몰려 체한 것 같다"고 했다.
아내가 정신을 차린 듯 몸을 조금 움직였다. 옆에 서있던 외국인 여성 승무원이 산소 호흡기를 다시 뗐다. 한국인 승무원은 아내에게 "비즈니스석으로 가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승무원들은 아내를 비즈니스석으로 안내해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내가 실신하여 응급조치를 받고 비즈니스석으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약 30분이 소요된 듯하다. 이 사이에 루프트한자 승무원들이 보여준 응급조치와 뒤처리는 일사불란하게 진행됐다. 덕분에 아내는 기력을 회복해 무사히 귀국하게 됐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험 상황이 거의 수습됐을 무렵, 차트를 기록하며 응급조치를 지시하던 한국인 남성 승무원에게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봤다.
"혹시 의사 선생님이신가요?"
"아닙니다. 저는 승무원입니다."
한국인 남성 승무원은 의사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이 답변을 듣기 전까지 이 분이 차트를 들고 혈압을 기록하고, 뭔가를 지시하고 해서 의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내에서 의사 출신 승무원을 두는 것이 의외이긴 하지만, 의사로 착각할 정도로 충분히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의사가 아닌데 어떻게 응급조치를 그렇게 잘하십니까?"
"저희는 기내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해 훈련을 많이 받습니다. 훈련 매뉴얼에 따라 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너무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할 일을 한 것입니다."
비즈니스석으로 자리를 옮긴 아내의 잠자리를 살펴본 뒤 아들과 함께 우리 자리인 이코노미석으로 돌아왔다. 남은 여정은 뜬 눈으로 보냈다.

마침내 2023년 2월 3일 오전 11시 25분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챙기기 위해 자리로 돌아온 아내는 언제 실신 소동을 벌였나 싶을 정도로 정상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비즈니스석에서 편히 잠을 잔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비즈니스석에 가 있는 동안 여 승무원이 와서 생수를 갖다주고, 한국인 승무원이 불편한 것이 없는지 물었다고 했다.
기내를 나오면서 한국인 남성 승무원을 찾아보았다. 그는 문 입구 옆에서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명함이 있으시면...." 연락처라도 알아서 성의를 표시하고 싶었다.
"괜찮습니다." 그 승무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뒤에 밀려 나오는 승객들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말만 남기고 기내를 빠져나와야 했다. 다른 승무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글을 통해 2023년 2월 2일 오후 뮌헨을 출발해 2월 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도착한 루프트한자(LH) 718기의 승무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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