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로 살면서 남자든 여자든 상대에게 불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좋은 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될 때가 많다.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지만 단점은 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다.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귀가 탓에 '혼밥'을 챙겨 거실로 갔다. 아내가 피곤한 듯 소파에 반쯤 기대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내 바로 앞쪽에 밥상을 내려놓았다.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들려고 하자 아내가 "여보!" 하고 불렀다. 뒤돌아 보니, 내가 아내의 시선을 방해한다는 눈치였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내가 가리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이 긴장관계가 됐다. 누구든 한쪽이 양보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내가 상을 들고 한쪽으로 비켜주든지, 아내가 몸을 일으켜 옆으로 이동하든지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내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옆으로 이동할 모양이었다. '내가 마지못해 양보한다'는 듯이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적어도 '양보해 줘서 고맙다'든가, '자리를 옮기게 해서 미안하다'든가, 아니면 '아니야, 내가 옆으로 이동할 게'라든가 등등 무엇이든 화답하는 말을 하는 게 좋을 듯했다.
나는 통상적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말을 건넸다.
"여보, 나보다 당신이 이동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내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자신 있게 말을 이어 나갔다. "왜냐하면, 당신은 텔레비전 본다고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기 때문에 지금쯤은 몸을 움직여 주는 게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자 아내의 불만스러웠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웃음을 애써 참는 것 같기도 했다.
밥을 먹으면서 아내가 보는 방송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대략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신으로 이혼을 결심했던 젊은 부부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상대에 대한 불만과 그 이유를 털어놓고, 상대를 이해하고 반성하면서 부부 인연을 계속 이어 나가기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방송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내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에게 불만이 많겠지? 나에게 가장 큰 불만이 무엇이야?"
나는 아내의 갑작스럽고 당돌한 질문에 '나이 들어서 저런 질문을 왜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60대이고, 아내는 50대 후반이다. 30대쯤이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뭔가 말을 해야 할 듯싶었다.
아내는 "지금 무슨 말할까 고민하는 거야? 그냥 빨리 말해봐요."라고 다그쳤다.
나는 "없다."고 잘라 대답했다.
"왜 없어요? 내가 자주 짜증 내고 잔소리 하는 것 싫어하잖아요?" 하고 아내가 재촉했다.
"아니, 없어. 없는 건 없는 거지." 나는 계속 '없다'고 우겼다.
아내는 "왜 나한테 겁먹었어?"라고 기세를 올렸다.
"그럼, 당신이 무섭지." 내가 바로 대답했다.
이 말을 하는 순간, 밥을 먹고 있던 나는 밥알을 밥상 위로 튀기고 말았다. 나를 '겁쟁이'로 만들어서라도 답을 듣고 싶어 하는 아내에게 마지못해 대답하는 자신을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기 때문이다.
밥알이 상 위에 튀긴 걸 본 아내는 "아휴, 더러워."라면서 "밥 먹다가 그게 뭐예요?"라고 한소리 했다.
"밥 먹는 사람에게 '무섭냐'라고 물어보면 먹은 것도 다 체할 거야. 체하지 말라고 밥알이 튕겨 나간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그냥 웃고 말았다.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불만'으로 시작된 다소 경직된 대화 분위기가 '밥알'로 상황이 종료된 셈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내에게 불만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찾으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만난 이후부터 불만스러웠던 일을 찾아낸다면 고구마 뿌리 캐듯이 많이 달려 나올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잊혀 가는 부정적인 것들을 일부러 찾아내고 부각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금쪽같은 시간과 열정을 그런 것에 쏟는 것은 낭비다. 불만과 단점 같은 것들은 기억 속에서 빨리 지우는 것이 좋다. 특히 남남이 만나서 인연을 쌓고 가족을 책임지는 부부 사이에선 더욱 그렇다. 세월이 가면 대부분의 일들이 희미해지거나 지워지는데, 부정적인 것들을 굳이 되살릴 필요는 없다. 언제 어디서든 긍정적인 면과 희망적인 것, 좋은 점을 기억하고 확산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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