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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저린 꿈에서만(시 전봉건)

polplaza 2023. 11. 1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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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뼈저린 꿈에서만'이라는 시는 정봉건 시인이 쓴 시이다. 시 낭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애송하는 시로 꼽힌다. 인터넷에 게시된 것과 낭송된 것들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 아래에 전문을 옮겨 놓는다(출처: 제16회 현대문학신문·열린서울 전국詩낭송대회 자료집).


제목: 뼈저린 꿈에서만(시 전봉건)  
 
그리라 하면 그리겠습니다.
개울물에 어리는 풀포기 하나
개울 속에 빛나는 돌멩이 하나
그렇습니다.
고향의 것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똑똑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그리겠습니다.
 
말을 하라면 말하겠습니다.
우물가에 늘어선 미루나무는 여섯 그루
우물 속에 노니는 큰 붕어도 여섯 마리
그렇습니다 
고향의 일이라면
무엇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지금도 생생하게 틀리는 일 없이
얼마든지 말하겠습니다.
 
마당 끝 홰나무 아래로
삶은 강냉이 한 바가지 드시고
나를 찾으시던 어머님의 모습
가만히 옮기시던 그 발걸음 하나하나
나는 지금도 말하고 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한 가지만은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만은
내가 그리질 못하고 말도 못 합니다.
강이 산으로 변하길 두 번
산이 강으로 변하길 두 번
그러고도 더 많이 흐른 세월이
가로세로 파놓은 어머님 이마의
어둡고 아픈 주름살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말로 하려면 목이 먼저 메이고

어머님,
꿈에 보는 어머님 주름살을
그림으로 그리려면 눈앞이 먼저 흐려집니다.

아! 아! 이십육 년
뼈저린 꿈에서만 뫼시는 어머님이시여.

(성모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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