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표 선생은 생전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할 무렵 신문명정책연구원 사무실에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인생의 마지막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멀리서 안타까워 위로차 오시는 분들도 있고, 암 치료에 좋다는 민간 처방전을 알려주기 위해 오는 분들도 있었다.
선생은 2024년 7월 31일 지인 등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한 가지 꼭 할 말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내가 몸이 좀 아프니까 걱정을 해가지고 위로금이라고 해야 하나, 돈을 주는 분들이 많다"면서 "만났다 하면 돈이야. 그래서 내가 정말 돈은 사양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죄를 지은 일이 별로 없는데, 내가 지은 죄 중에서 제일 큰 죄가 민폐 끼친 일"이라고 '고백'했다.
장 선생은 "내가 이 민폐를 너무 많이 끼쳐서 내가 이런 중병을 앓게된 것이 아닌가 싶다"며 "이제는 내가 몸이 아파가지고는 절대로... 내 이 진심이다. 돈 받을 생각이 (없다). 후원금은 정말로 제가 받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리고 또 하나, 마침 암환자는 치료비의 5%만 부담한다"며 "5%는 내가 부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되니까. 또 내가 치료를 받을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후원금은 오늘 내 말씀을 들은 분만이라도 후원금은 안 내는 것이 나의 부담을 좀 덜어주는 것"라고 덧붙였다.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처럼 장 선생은 어떤 관직도 맡은 적이 없다. 여러번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재정적 후원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해 미안함이 컸을 것이다. 이번에는 지인들이 치료비에 보태 쓰라고 또 돈을 주겠다고 하니 그걸 받기에 너무 염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선생은 "아무쪼록 걱정을 끼쳐서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아까 저기서 '장기표 선생 살아있어야 된다'고 하던데 장기표 없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망하는 게 아니다. 내 없어도 다 세상은 돌아갈 것은 돌아간다"고 참석자들을 위로했다. "끝으로 나는 그냥 자위의 차원이 아니고 내 정치철학의 핵심이 자연의 이법에 따라서 사회가 운영되고 삶이 영위돼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죽음도 자연의 이법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이 죽음을 담담히 진심으로 받아들인다"고 죽음을 맞는 초연한 심경을 밝혔다.
선생은 "나는 이거는 굉장히 그리고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냥 갑자기 되는 게 아니다"며 "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면 평소에 굉장히 훈련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실 평소에 죽음을 굉장히 내 딴에는 훈련해온 사람이고 내가 요거는 좀 건방진 말씀인데 나는 죽음은 삶의 총화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즉, '그 사람이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 하는 모든 것을 총화, 총화이기 때문에 내가 이 죽음에 임박해서 어차피 살만큼 살았고, 할만큼 했는데 내 전혀 미련이 없다"며 "하여튼 이 죽음과 관련해서 안타까운 점은 있지만 그러나 담담히 받아들일 자세는 충분히 충분히 돼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너무 마음 아파하시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선생의 입장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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