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지인들 중에는 가끔 지난 9월 별세한 장기표 선생과의 인연이 얼마나 됐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당황스럽다.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가까운 인연을 쌓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 시절, 잠시 스쳐간 순간부터 따지면 30년은 족히 될 것이다. 정치인들 중 잠시 인사를 나누고 바람처럼 스쳐간 인연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기억한들 상대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나는 1999년 정치 전문 인터넷언론을 창간한 바 있다. 언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사업자를 내고 정치전문 기사를 내보낸 것은 사실이다. 하루하루 발생하는 뉴스보다는 뒷 이야기 중심으로 글을 썼다. 이 무렵, 외부 필진 몇 분을 초빙하였는데, 장기표 선생의 허락을 받아 '외부 필진 칼럼'에 게재한 것으로 기억된다. 인터넷 언론을 만들어 게시한 글을 내 사이트로 옮겨서 그대로 실은 것이다. 2000년 16대 총선을 치른 후 재정문제로 인터넷언론을 그만뒀다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재개한 바 있다. 이 때도 선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내가 운영했던 정치 사이트에 옮겨서 칼럼으로 실었다.
연말 동창회 행사를 앞두고 기수별 영상을 만드는데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과거 사진을 찾다가 장기표 선생과 만나는 사진을 보게 됐다. '2016년 2월 13일 토요일 오후 3시 27분'에 찍은 사진이었다. 선생이 인터넷신문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한번 보자고 했을 때였다. 남영동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해서 신문 운영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인근 커피숍으로 이동해서 대화를 나누던 모습이다. 사진은 카페 직원에게 부탁해서 찍은 것으로 기억된다. 얼굴이 보이도록 하기 위해 내가 잠시 모퉁이 자리로 옮겼다. 선생이 대화하는 장면은 마주 앉았던 내가 앞에서 찍은 것이다.
선생은 당신의 인터넷 신문에 직접 참여해 줄 것을 제안하였으나, 비용 문제로 어렵겠다고 대답했다. 대신 내가 운영하는 정치전문 사이트와 기사 교류 등 상호 협력하자는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선생의 옆자리 봉투 위에 책이 한 권 보이는데, 내가 쓴 책이다. 이날 나의 책을 챙겨가서 선물로 드린 것이다. 이 때부터 선생과 직접적인 인연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전화 통화를 하거나 선생이 주관하는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선생은 또 당신이 쓴 서적 몇 권과 선생에 관한 인쇄 자료물을 봉투에 넣어 내게 주었다. 이 책들과 인쇄물은 선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럭저럭 인연을 따지면, 돌아가시기 전까지 햇수로 8~9년쯤 됐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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