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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더불어민주당에 열린우리당 유전자 엿보여'

polplaza 2021. 4. 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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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21년 4월 7일 치러진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 힘 오세훈 후보가, 부산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각각 57%, 62%의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김영춘 후보를 크게 따돌리고 당선됐다. 이런 가운데, 17년 전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가 4년 뒤 사라진 열린우리당의 '실패'가 재연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지난 언론 인터뷰가 뒤늦게 관심을 끌고 있다.


바로 1년 전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지역구 253석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63석을 차지해 84석에 그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정의당 1석, 무소속 5석)에 대승을 거둔 결과를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이다.(21대 총선의 비례대표 당선인은 총 47명 가운데 미래한국당 19명, 더불어시민당 17명, 정의당 5명, 국민의당 3명, 열린민주당 3명이다.)
비례대표 당선자를 포함할 경우,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과반을 훌쩍 넘는 180명이나 된다. 헌법 개정을 빼고는 뭐든지 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한 것이다.

21대 국회 개원 후 더불어민주당이 임대차 3법 처리, 공수처법 개정 등을 강행하고, 국회 법사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것도 압도적 의석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4.7 재·보선에서 서울시장선거와 부산시장 선거 등에서 참패한 것은 '민심의 역풍'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재주복주(載舟覆舟)'라는 말이 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가 한 말로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민심을 중하게 여겨야 된다는 것이다. 물은 민심이고, 배는 왕권을 비유한 말이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17대 총선에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열린우리당은 152석으로 단독 과반수를 얻는 대승을 거뒀다. 그런데, 4년 후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의 정당 간판은 사라지고 없었다. '통합민주당'이라는 간판 아래 선거를 치렀지만 비례대표 당선자까지 포함해 81석으로 크게 쪼그라들었다. 4년만에 완전히 민심을 잃고 만 것이다.

이번 4.7 재보선 결과를 놓고 유추해본다면,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3년 뒤 치러질 제22대 총선에서 이런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와 관련해, 1990년 3당 합당을 반대해 창당한 민주당으로 1992년 총선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후, 한나라당 부총재를 거쳐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내고 정계를 은퇴한 이부영(79) 전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의 언론 인터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이사장은 한국일보와 올초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지난해 총선의 대승 이후 정부ㆍ여당은 실책을 연발했다. ‘협치’와 ‘민주적 개혁’이란 정치 개혁의 과제가 청와대 비서실 비대화로 상징되는 제왕적 대통령, 거대 여당의 독주 등으로 빛이 바랬다. 공수처법 통과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출범 당시 초심을 저버리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2004년 열린우리당의 폭주가 반복되는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으로 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직후 정동영 의장이 입각하면서 내가 우리당 의장을 맡았다. 우리당은 개원 직후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언론관계법, 과거사 진상 규명법4대 악법이라고 지목하고 개혁을 추진했다. 당시 여당 내에서 국가보안법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이 나였지만,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끈질긴 협상을 통해 국내 정치 탄압에 악용돼 온 국가보안법 7조(찬양, 고무 등)를 폐기하는 것으로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여당 내 주류 강경파들이 전면 폐지를 고집하는 바람에 법 개정이 무산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 더불어민주당에서 2004년의 유전자가 그대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검찰개혁을 윤석열 총장 쳐내기로 전락시킨 폭주다. 이미 법적 근거를 갖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서두르는 과정에서 야당의 거부권을 박탈하면서, 출범도 하기 전에 정치적 중립성에 상처를 낸 것도 그렇다. 이런 모습들이 모두 정부 여당 지지율 하락을 부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이사장은 운동권에 대해 "6ㆍ29선언 이후에 1987년 대통령 선거 때 김천교도소에 있었다. 김대중ㆍ김영삼의 분열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고문당하고 감옥살이한 보람도 없이 대통령 선거에 패배하는 과정을 고통스럽게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분노한 젊은이들은 맨주먹으로 시멘트 벽을 쳐 주먹들이 피범벅이 되곤 했다. 그런데 보수 야당의 분열에 분노하고 비판하는 젊은이들도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같은 이념으로 나뉘어 식사도 운동도 함께하지 않을 정도로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 ‘김대중ㆍ김영삼 분열이나 자네들 분열이 뭐가 크게 다른가. 앞으로 이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가게 될 자네들의 이 모습이 큰 화근이 될까 걱정이다’라고 얘기해 줬다."고 했다.

그는 "이제 당시의 이념적 차별은 사라졌겠지만, 폐쇄적 네트워크는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것이 ‘개혁’ ‘민주’로 포장돼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가치마저 자신들의 집단적 이해관계 속에 쉽게 타협 대상이 된 듯하다. 그들의 이념은 더 이상 이념도 진보도 아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래디컬 리버럴리즘’ 즉 과격한 자유주의다. 정치평론가 홍세화 씨가 최근 이런 모습을 보고 ‘민주 건달’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은 국민에게 한 약속을 거듭 파기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난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 협상에서 소수정당에 더 많은 의석을 얻을 기회를 줘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 특히 거대 정당인 당시 자유한국당처럼 위성 정당까지 만들며, 눈앞의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다. 총선 결과는 의석을 보면 여당 압승이지만, 득표율로 보면 자유한국당과 근소한 차이였다. 그런데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당헌ㆍ당규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또 어겼다."면서 "정당은 유권자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당장의 이익을 포기하는 철저한 반성을 보여 줘야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층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는 약속도 있지만, 절대로 바꿔서는 안 되는 약속도 있다."고 했다. 국민과의 약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앞서, 이 이사장은 21대 총선 직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는데 그때 초선만 108명이었다. 초선일수록 의욕도 정치적 기대도 큰데 각자가 노 전 대통령처럼 되고 싶다는 게 느껴졌다. 이들은 당론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언론에 말하는 등 제어가 안 됐다.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108번뇌’라는 말이 나왔다. 이들이 4대 개혁입법을 정하고 특히 국보법을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보법은 유지돼 있고 열린우리당은 ‘종북당’으로 낙인찍혔다."고 했다.  

그는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 협상에 대해 "당시 열린우리당 152명 중 68명이 국보법 폐지를 반대했다. 한나라당 130여석까지 합치면 200명 가까이 국보법 폐지를 반대했다. 그래서 내가 중진들과 상의해 폐지가 아니라 5개 독소조항을 걷어내는 쪽으로 정하고 박근혜 대표와 물밑 합의했다. 국내에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부분만 걷어내고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처벌하자는 타협안이었다. 그런데 이를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가 거부하며 단 한 점, 한 획도 고치지 못하고 지금까지 왔다. 당시 초선들이 중진들을 배신자라 욕했고 중진들은 초선들의 주장이 청와대의 의사라고 생각해 침묵했다. 친북당, 종북당으로 매도당하면서 당 내부가 분열됐고 노무현 정부는 레임덕에 빠져 버렸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의 개혁입법 처리에 대해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게 먼저다. 코로나19로 악화된 경제를 살리고, 기업 특히 중소기업을 빠르게 회생시키는 등 할 것부터 한 다음에 나중에 원하는 법안 처리에 나서면 된다. 이념 섞인 법안부터 하려고 해서 일부러 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다. 국민이 많은 의석을 준 이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니까 이때 (쟁점법안을) 해치우자는 그런 욕망이 있을 텐데 경제부터 잘 살리고 지금처럼 국민 지지를 넓게 받으면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원하는 법안 처리도 가능해질 수 있다. 국민이 민주당에 다수 의석을 준 건 의석수로 밀어붙여서 법안을 처리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유를 가지고 쟁점이 큰 법안 등은 국민과 야당과 털어놓고 토론한 후 처리하라는 뜻이다.”고 조언했다.

 

(이부영)

<이부영 약력>

1942년 서울 생. 용산고,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1974년 동아일보 기자 재직 중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히 결성 및 10월 유신 반대 자유언론신천선언문 발표로 이듬해 해직됐다.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됏다. 
1986년 5.3 인천사태 주도 혐의로 영등포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내막을 알아채고, 교도관(전병용)을 통해 대학 동기이자 민주화운동 동지인 김정남에게 전달하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1990년 3당 합당(민자당)에 반대해 만든 '꼬마' 민주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한 뒤 14(민주당), 15대(통합민주당), 16대(한나라당) 총선에서 서울 강동구갑에서 내리 3선을 했다. 한나라당에서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부총재를 지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강동구갑에 출마해 낙선했다. 그러나 당시 정동영 의장의 입각으로 과반의석인 152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의장을 맡았다. 2015년 정계를 은퇴한 후, 2020년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앞서 2003년 이우재 김부겸 김영춘 안영근 등과 함께 5명이 한꺼번에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세칭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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