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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 나는 고발한다(Émile Zola, « J’Accuse… ! »

polplaza 2021. 4. 2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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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는 1898년 로로(L’aurore, 여명)지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졸라는 밤을 새우며 이틀에 걸쳐 쓴 편지 형식의 이 글을 유인물로 인쇄해서 뿌릴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인쇄를 맡기러 가기 전에 평소 알고 지내던 조르쥬 클레망소를 찾아갔다.
로로의 공동 발행인 클레망소는 글을 본 후 자신의 신문에 싣자고 제안했다. 원제는 ‘공화국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였으나, 클레망소가 ‘J’Accuse… !(나는 고발한다)’라는 헤드라인을 뽑았다(맨 아래 사진 참조).

(에밀 졸라)


클레망소는 로로 신문 1898년 1월 13일자 1면에 통으로 ‘나는 고발한다’는 졸라의 글을 실었다. 로로 신문은 평소 수만부 팔리는 작은 신문사였지만, 이 글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졸라의 글이 실린 신문은 3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해외에도 졸라의 고발 내용이 신속하게 퍼져나갔다. 졸라의 유명세가 톡톡히 한몫했다. 졸라는 당시 통속 소설을 쓴다는 이유로 프랑스아카데미 회원에 가입하지 못했으나 소설가로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시기였다.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여생을 편하게 보냈을 것이 분명했다.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의 내막과 진실을 알게 되자 불의와 거짓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는 정의를 위해, 진실을 위해, 프랑스 공화정을 위해 ‘드레퓌스 간첩’ 사건이 조작된 사건임을 고발하기로 결심했고, 마침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졸라는 이 글에서 드레퓌스 사건이 조작됐으며, 이에 가담한 군 고위 간부들과 필적 감정가들의 조작 혐의를 고발했다. 그에게 닥칠 각종 압박과 불행을 예견하면서도 사건을 조작한 군과 유태계를 혐오하고 배척하는 대중, 반유태계 여론에 영합하는 언론 등에 맞서 싸우기로 했던 것이다.

졸라는 이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11개월만에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그는 시골에 집을 지어 휴식차 그곳에 머물곤 했다. 1902년 9월 말 파리로 돌아온 다음날 그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산화탄소에 중독돼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향년 62세(1840.4.~1902.9.)였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버지와 프랑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졸라는 7세 때 아버지를 잃고, 청소년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 작품으로 테레즈 라캥, 루공 마카르 총서 전20권(목로주점, 대지, 제르미날 등이 20권 속에 있음), 3도시 총서, 4복음서 등을 남겼
다. 미술계에서 고전주의 경향과 달리 새로운 화풍을 일으킨 인상파 화가들을 옹호하는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드레퓌스 사건이란, 유대인 출신의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군에 근무 중 간첩 누명을 쓴 사건이다. 드레퓌스는 독일에 군사 기밀을 넘겨준 스파이 혐의로 1894년 군사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섬에 유배됐다. 프랑스는 1871년 보불전쟁에서 패한 후 독일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이 매우 높았다. 대중은 반유대주의 정서가 강했고, 일부 언론은 이런 여론에 편승하여 여론몰이를 했다. 드레퓌스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자신이 근무했던 군부는 오히려 그에게 누명을 씌웠다. 대중과 일부 언론은 군부의 조작 사건을 믿고 그의 처형을 요구하기도 했다. 반유대인 선동을 부르짖는 대중 앞에 드레퓌스는 희생양이 됐다.

졸라의 고발을 계기로 간첩 혐의를 받아 종신형에 처해졌던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우여곡절 끝에 1906년 7월 12일 최종 무죄를 확정받았다. 졸라가 사망한지 약 4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재수사와 재심 끝에 독일에 군사 기밀을 팔아먹은 진범은 에스테라지로 특정됐으나 처벌은 흐지부지됐다. 드레퓌스는 1차 세계대전에 소집돼 전공을 세워 중령으로 승진되고,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젊은 날 간첩 누명을 쓰고 종신형에 처해졌던 불명예와 감옥생활에 대한 보상을 신청하지 않았다.

졸라의 고발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역사에서 진실과 거짓을 바로잡고, 정의를 바로 세운 용기 있는 작가였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군부와 대중, 언론에 맞서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졸라. 그가 쓴 ‘나는 고발한다’는 글은 세기의 사건이었다.

졸라는 자신이 쌓아왔던 명성과 부, 인생의 전부를 걸고 진실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레퓌스 개인의 누명을 벗기는 것 이상으로 프랑스의 이성과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불의와 거짓, 대중의 광기에 맞선 그는 진정한 지식인이었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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