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정치마당/정치이야기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하)-남북관계의 앞날

polplaza 2021. 12. 5. 20:50
반응형

<<[편집자주] 이 글은 필자가 35년 전인 1996년 8월 국회 '통일대비 의원연구모임'의 방중 일정에 동행하여 취재한 내용을 당시 부산매일신문이 보도한 전문이다. 당시 신문 스크랩을 찾아 블로그에 전재할 수 있게 됐다.>>

"北韓도 조심스런 개방 韓國이 경제모델 될 것"


북한은 변하고 있는가. 金日成 사후 북한체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으며 지금의 金正日체제는 어떤 입장에 놓여 있는가. 남북한 관계의 앞날은 바람직스럽게 진행될 것인가.

('연변에서 본 북한(하)' 시리즈 표제어)

(중국령 도문시에서 바라본 두문강 건너 북한 땅)




국회 통일대비의원연구모임 訪中團 일행의 발길은 북한과 접경지역인 도문(圖們)강과 백두산 천지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분단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북한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바로 저기가 우리 땅 북한인데…'라는 아쉬움만 곱씹어야 했다.

(1996년 8월 도문강 관광기념품 판매센터. '세계를 보는 두만강 여행길에 복많이 받으옵소서'라는 관광객을 반기는 문구가 창문에 씌여 있다)


이같은 현실적 한계로 인해 우리 일행은 연변 조선족과 중국 지도층 인사들의 입을 통해 북한을 간접 체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7일 새벽 1시. 장춘(長春)시 모 호텔.
남·북한 및 중국의 한국어9조선어) 학자들이 참가한 사상 첫 '코리안 언어학자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이곳에서 朴鍾雄 의원은 조선족 출신의 중국측 대표 2명을 만났다. 李學秀 길림성 민족사무위원회 문교처장과 全學石 중국조선어학회 이사장 겸 연변대(延邊大) 교수가 그들이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심야 면담에서 朴 의원은 학술회의 참관 허용과 북측 대표단과의 면담을 주선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회 문화체육공보위 위원이기도 한 朴 의원은 한국어의 문법과 언어 통일을 모색하는 이 회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朴 의원은 訪中 동료의원들을 6일 먼저 귀국시킨 후 이날 밤 북경에서 본사 기자와 함께 長春으로 날아왔다. 여장도 채 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실무 주도자인 李 처장은 회의는 비공개 원칙이고 북측 대표단은 대외 접촉을 꺼린다는 점을 들어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李 처장은 북한 대표단의 참석을 권유하기 위해 지난 5월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면서 가까스로 참석한 북측 대표단을 자극할까봐 꽤 신경쓰이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력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7일 오전 李 처장의 주선에도 朴 의원의 요구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沈炳浩 북측단장(북한 사회과학원 국어사정위원회 서기장)은 결국 남한 국회의원의 면담 제의를 기피했다. 朴 의원은 이날 낮 점심 식사차 이동하는 沈 단장 일행을 억지춘향격으로 길거리에서 만나 잠시 인사말을 건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 대목은 불과 12시간 동안의 일이었지만 북한체제의 한 단면을 읽을 수 있었다. 북한은 아직 남한 고위 인사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폐쇄적인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비정치적 행사에는 문호를 개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었다. 그것이 변화라고 한다면 변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일행이 만났던 중국 지도층과 조선족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지난 6일 만났던 田紀雲 전인대 부위원장은 "일련의 기미를 보면 북한도 일정한 개방화를 추진하는 것 같다"고 진단하고 "내 생각으론 북한이 한국 경제발전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그 실례로서 나진(羅津) 선봉(先鋒)지역 개발을 들었다.
2일 만났던 鄭判龍 연변대 부총장은 "중국은 개방정책을 시도하면서 과거 정책의 잘못을 4인방 탓으로 돌렸으나 북한은 그런 대상이 없는 상태"라면서 "따라서 북한이 진로 수정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옳다고만 해온 과거를 부정해야하는 모순을 극복하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鄭 부총장은 "그러나 북한이 중국처럼 변화와 개방을 조심스럽게 추진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북한 지도부가 나름대로 모순을 극복하는 묘안을 짜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나진 선봉지역 외국인 투자 유치와 관련해 "당장 기업 이윤이 없더라도 한국 기업들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면서 한국 정부가 나진 선봉에 지출하는 기업을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변화와 우리 정부의 對北정책은 장기적 안목에서 봐야한다는 주문이었다. 한편으로 남북한의 교류가 빈번한 연변지역을 남북 동질성 회복의 교두보로 확보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항일독립운동가였던 金學鐵옹은 보다 극단적인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식에게 정권을 물려주는 체제가 온당한 정권이냐"고 반문하면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그만한 상식도 없고 과거 역사에서 보듯이 백성의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권이 오래 갈리 없다"고 북한체제의 조기 붕괴 가능성을 확신에 찬 어조로 언급했다. 양쪽의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체제 통합의 통일은 기대할 수 없고 세습체제인 북한정권의 조기 붕괴로 통일이 달성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鄭 부총장은 "동방정권은 서방정권과는 달리 몇천년 동안 민주주의를 모르고 살아왔고 유교 영향으로 잘 안무너진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북한체제 붕괴론에 대해 중국 관리들의 생각도 부정적이었다. 남북 당사자간 평화적 해결원칙(田紀雲)과 북한체제의 붕괴를 생각해선 안된다는 입장(汝信 사회과학원 부원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 방문단과 5일 밤 세미나를 가진 북경 특파원들도 북한의 조기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북한의 金正日은 이미 오래전부터 후계자 작업을 해왔고, 특히 당과 군의 요직에 자파인사들을 배치해놓고 있어 체제 수호의 장악력을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파원들은 다른 각도에서 오히려 북한은 남한이 체제 붕괴를 전제로 흡수통일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북한이 남한을 경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백두산 천지에 오른 국회 통일대비의원연구모임 방문단)


4박5일간 訪中일정을 마친 의원들은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많은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면서 "앞으로 통일연구모임에서 이번 경험을 적극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 의원은 "백두산을 보러오는 우리 국민들이 중국에다 돈을 쓸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돈을 쓰는 날이 빨리 와야 할 것"이라는 의미있는 말도 남겼다.
한편 코리안 언어학자 국제학술회의에 들렀던 朴鍾雄 의원은 이 회의가 우리 정부의 경비 지원없이 계속 열리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고 정부측에 예산지원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증진에 필요한 예산은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朴 의원은 강조했다.
지난 7일 막을 내린 이 회의는 "더 이상 일방적인 새로운 어문 규범을 만들지 않는다"는 합의를 도출, 일단 남·북한과 중국 조선족간의 언어 이질화의 확산을 방지하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다. 적어도 비정치분야에 한해 남·북한간에 변화와 협조가 현실화된 '사건'이었다. <長春=沈平輔 기자>



(1996년 8월 17일(토)자 부산매일신문 9면 캡처)



[사이버정치마당/정치이야기] -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상)-조선족의 현주소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상)-조선족의 현주소

서울 유행 한달이면 상륙, 여성패션 점차 화려·대담 <<[편집자주] 이 글은 필자가 35년 전인 1996년 8월 국회 '통일대비 의원연구모임'의 방중 일정에 동행하여 취재한 내용을 당시 부산매일신문이

polplaza.tistory.com


[사이버정치마당/정치이야기] -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중)-중국의 對한반도觀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중)-중국의 對한반도觀

"짧은 訪中기간이었지만 중국의 무한한 잠재력을 느낀다" "우리가 중국의 발전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언젠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polplaza.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