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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중)-중국의 對한반도觀

polplaza 2021. 12. 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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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필자가 35년 전인 1996년 8월 국회 '통일대비 의원연구모임'의 방중 일정에 동행하여 취재한 내용을 당시 부산매일신문이 보도한 전문이다. 당시 신문 스크랩을 찾아 블로그에 전재할 수 있게 됐다.>>

"한국과 북조선은 다 같은 우방"


  "짧은 訪中기간이었지만 중국의 무한한 잠재력을 느낀다" "우리가 중국의 발전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언젠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이다"

  이번 중국 방문에 나섰던 국회 '통일대비의원연구모임' 회원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중국을 무서운 잠재력을 가진 국가로 평가했다. 21세기가 아시아·태평양 시대라면 중국은 아·태시대의 거인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12억의 인구에다 한반도 크기의 44배나 되는 면적(약9백60만㎢)을 가진 나라, 전인구의 약 8%(8천5백80만)를 차지하는 55개 소수민족(이중 조선족은 약1백92만명)을 융합·통치해오고 있는 漢族 중심의 중국.
  지금 중국은 이미 거대한 용트림을 시작한 단계였다. 지난해말 기준 국민총생산액이 약 6천9백52억달러이고 GNP 성장률이 약 10.2%인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내년 홍콩이 반환되면 중국의 경제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중국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한반도의 장래와 관련해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6일 우리 방문단 일행과 면담을 가진 田紀雲 전인대 부위원장(67)의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우리측 대표 단장인 朴鍾雄 의원이 남북한 관계 개선에 중국이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한데 대해 "우리는 한국과 북조선이 다 같은 우호적 우방관계"라면서 "남북 쌍방이 여러 요로를 통해 협력과 교류를 해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남북 문제에 관한한 당사자 해결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우리 정부가 북한측에 제의해놓고 있는 4者회담도 중국측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라 북한측의 태도에 달렸다는 암시를 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정문)


  田 부위원장은 朴 의원이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을 느꼈다"는 동료 의원들의 訪中소감을 전하자 "내 생각에 우리가 한국을 따라가려면 적어도 20~30년이 걸려야 한다고 본다"면서 "우리 중국에는 아직도 5천5백만의 인구가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라면 남의 나라 지도층 인사들에게 감히 할 수 없는 자존심이 걸린 말이었다. 물론 중국의 일부 소수 민족은 동굴속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특히 개방화 이후 빈부 격차가 더 커졌다고 한다. 그러나 田 부위원장의 말은 대국의 자신감이 배어 있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연변에서 본 북한' 이라는 시리즈물 표제어와 시리즈 기사 제목)


중국의 對한반도 觀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영토 확장문제를 거론했다. "우리 민족(漢族)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토를 확장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駐中대사관측은 이에 대해 "그것은 중국 지도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최근 미국이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일대비의원연구모임 일행은 이번 訪中기간 중 田 부위원장뿐만 아니라 汝信 사회과학원 부원장과 周覺 전인대 외사위 부주임도 만났다. 이들을 만난 후 공통된 소감은 중국 지도부의 대외 입장이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공산당의 방침에 어긋나는 개인적인 사견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과학원은 중국의 국내외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여기서 입안한 정책은 중국 지도부의 최종 결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국가정책 자문기관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汝信 부원장의 對북한관은 중국의 對북한 입잗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선 국내 일각에서 추측하고 있는 북한 조기 붕괴론에 대해 汝 부원장은 "북한이 붕괴된다고 생각해선 안된다"고 한마디로 일축했다. 그는 "남한이 북조선을 감정적으로 대해선 안되며 4者회담과 같이 전제조건을 달지 말고 북조선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주요 정책 입안자 입에서 이같은 對북한 입장을 확인한 것은 우리 방문단의 소득이랄 수 있다. 국내 통일 논의에 참고할 만한 대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996년 8월 백두산 천지 이정표)


  지난 92년 8월 24일 韓·中수교가 수립된 이후 중국은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한국은 중국의 5대 교역국으로 서로가 중요한 교역국이 됐다. 그런데 연변 조선족지역에 우리 국민의 왕래(지난해 약 20만명 추산)가 급속히 증가됨에 따라 조선족에 대한 중국의 신경이 곤두 서있다고 한다.
  우리 대사관측은 연변 동포들과 이곳을 드나드는 우리 국민들의 편익을 위해 연변에 영사관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답보상태라고 대사관 관계자가 밝혔다. 중국이 부정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독립국가가 있는 조선족들이 자칫 동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입장에서도 가급적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동포 지역에 '속보이는' 영사관 설립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상황이 아니라고 했다.
  중국의 대내외 정치는 아직 폐쇄성을 띠고 있었다. 국가의 양대축의 하나인 경제는 개방화 물결을 타고 있으나 다른 한 쪽인 정치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사관측은 중국 정치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한동안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망했다.

(1996년 8월 연변 도로를 따라 지나가는 소달구지)


  한편 訪中기간중 터져나온 한국민족작가회의 金하기씨(38·본명 金榮)의 취중 '입북'사건은 중국의 對남북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 대사관측이 즉시 진상을 파악해줄 것을 중국측은 적극적인 대응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대사관측에 따르면 남북 양측 사이에서 중국이 곤란한 입장에 놓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은 중국이 남북한을 사이에 놓고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처지가 돼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21세기 동북아의 맹주로 급성장할 충분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인만큼 그동안 우리가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춰야겠다는 것이 우리 의원들의 솔직한 소감이었다.<北京=沈平輔기자>


(1996년 8월 16일(금) 부산매일신문 9면 기사 캡처)

 

[사이버정치마당/정치이야기] -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상)-조선족의 현주소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상)-조선족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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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정치마당/정치이야기] - 35년전 연변에서 본 북한(하)-남북관계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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