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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에 등장한 한국인이 만든 '어글리돌'

polplaza 2021. 2. 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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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라이선싱국제엑스포(일명, LIMA SHOW)'에 세계의 유명 캐릭터들이 총출동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캐릭터 하나가 '어글리돌(Ugly Doll)'이었다. 괴짜 같은 모습이 우리나라 도깨비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캐릭터가 한국풍의 도깨비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부스에 전시된 갖가지 인형과 'UGLYDOLL' 이라는 영어 단어 사이에 한국어가 보였다. 바로 '어글리돌'이라는 한글 이름이 미국 회사(Uglydoll/Pretty Ugly, LLC) 부스 안에 적혀 있었다. 외국 회사의 부스 안에  한국어가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궁금증을 낳기에 충분하다.  그 옆에는 일본어 이름도 보였다. 

이 회사의 부스 안에는 동그란 눈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다양한 모습의 어글리돌 친구들이 아기자기하게 잘 정열되어 있었다. 연초록 배경색과 인형들의 다양한 색깔들이 조화를 이루어 보는 이들의 감성을 자아내게 했다. 각각의 캐릭터는 화가 났거나 험상궂어 보이는 표정들이었지만, 그런 표정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저 캐릭터는 잘 될까. 이 회사의 부스 안에 한글 이름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LIMA SHOW, UGLYDOLL Booth, 부스 중앙에 한글 '어글리돌'이 보임)

그것은 어글리돌 캐릭터 탄생에 한국 여성이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한 덕분이다.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 김선민 씨가 바로 그 인물이다.

김 씨는 현재의 남편 데이비드 호바스(David Horvarth) 씨와 같은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할 때 CC(캠퍼스 커플)로 지내다가 졸업 후 한국으로 귀국한 후 편지로 태평양 너머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이때 호바스 씨는 세계적인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당찬 의욕으로 자신이 개발한 캐릭터를 가지고 완구회사들을 찾아다녔으나 번번이 퇴짜를 당했다고 한다. 그는 절망의 나락에서 김 씨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마음을 표출한, 앞치마를 두르고 송곳니를 드러낸 성난 캐릭터를 그려 보냈다. '이 캐릭터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열심히 일해서 당신을 만날 것'이라는 편지글과 함께.

이를 본 김 씨는 그 캐릭터를 정성을 담아 손수 봉제인형으로 탄생시켜, 호바스 씨에게 위로의 선물로 보냈다. 호바스 씨는 봉제인형으로 돌아온 자신의 캐릭터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인형을 자랑했는데, 마침 뉴욕에서 매장을 운영하던 친구가 그것을 보고 입점을 제안해 상품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 이 인형이 두 사람의 첫 작품인 어글리돌의 선두주자인 '웨이지(Wage)' 였다. 2001년 처음 20개를 만들어 납품했던 것이 1년 새 1천 개 이상으로 주문량이 늘어났다고 한다. 

두 사람은 이 같은 시장의 호응에 부응하여 2003년부터 중국에서 대량 생산을 시작하고, 'UGLYDOLL' 이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론칭했다. 소위 못생긴 인형들을 총칭하는 브랜드로 'UGLYDOLL'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어글리돌의 결정적인 빅히트에는 할리우드 스타들도 한몫했다고 한다. 로빈 월리엄스, 애슐리 심슨, 패리스 힐튼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TV쇼 등에 출연할 때 이 인형을 들고 나와 세상의 시선을 받았다는 것이다. 더스틴 호프먼과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한 영화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에 소품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연계된 마케팅은, 그것이 김 씨 부부의 의지와 상관이 있든 없든, 시장에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에서도 앞다퉈 두 사람을 인터뷰로 소개했다고 한다.

그동안 웨이지를 비롯, Babo(바보), Peaco(피코), Abima(아비마), Jeero(지로), Tarket(타깃), Cinko(칭코), BigToe(빅토), Ox(옥스), IceBat(아이스베트) 등 약 30종의 어글리돌이 개발됐다. 각각의 캐릭터에는 성격과 이야기를 담아서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탄생된 어글리돌 인형은 그동안 세계에서 1천만 개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2007년부터 이 인형이 시판되기 시작했다. 어글리돌은 이제 북미지역은 물론 노르웨이, 스웨덴, 일본, 한국 등 동서양에서 주목받는 캐릭터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어글리돌의 성공 이야기는 한국 속담을 새삼 상기시킨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그렇다. 호바스 씨의 좌절과 낙담은 성공의 싹을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말이다. 부인 김 씨가 성공의 싹을 틔우는 정원사가 된 것이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또 하나, 어글리돌의 탄생에는 세상 사람들이 감동할만한 숨은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호바스 씨의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과, 김 씨와의 사랑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어글리돌은 '서양의 현대판 도깨비' 정도로 치부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어글리돌의 못난 표정과 이미지를 순화시키고,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각 캐릭터마다 이름과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의미있는 대목이다. 그림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캐릭터로서 상품성을 갖기 힘들다.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물품이 골동품처럼 귀한 가치를 갖는 것은 그곳에 특별한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시리즈 형식의 새로운 어글리돌을 시장에 내놓아 지속적인 관심을 촉발시킨 점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은 똑 같은 표정과 모양에 곧 식상함을 느끼게 되므로, 신상품 개발은 필수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스타들이 참여한(?) 마케팅 전략 또한 어글리돌의 성공에 기여했음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LIMA show, Uglydoll Booth)

 

(출처: 행군의 아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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