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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전환기의 새로운 경세철학(유재천)

polplaza 2021. 3. 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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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1998년 장기표의 '국가파산을 막을 희망의 메시지-구국선언'의 책 출간에 즈음하여 당시 유재천 한림대학교 부총장이 쓴 추천사이다.

(유재천 전 한림대학교 부총장)


장기표라는 이름은 이 나라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길이 기록될 우리의 자랑이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이후 군사독재의 암울했던 시기를 살아온 세대치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이 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이 같은 30여 년에 걸친 투쟁경력은 우리로 하여금 그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투사의 이미지를 갖게 만든다. 그러나 투사라는 이미지는 반드시 긍정적인 측면만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사란 가슴은 남달리 뜨겁되 머리는 냉철하지 못하고, 투쟁의 목표는 뚜렷하되 영근 비전이 결여되어 있으며, 행동은 과감하되 예지가 모자란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음을 부인할 수만은 없다.

민주화된 이후 우리가 많은 투사들의 행적에서 그 같은 측면을 확인해야 했던 일은 불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가 처음 장기표 선생을 만났을 때에도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되어버린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필자는 곧 나의 선입견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만남이 계속됨에 따라 필자는 투사로서의 장기표라는 이미지 대신 걸출한 경세가를 발견한 것이다. 이 사람이 과연 정부와 경찰의 수배망을 비웃듯 출몰하며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투쟁의 화신'이었던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장기표 선생은 여느 투사와 차별된다. "그의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이 있고,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이 시대 경세가로서 장기표 선생의 면모는 오랜 투쟁 경험에서 얻은 예지의 소산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필자는 그가 끊임없이 고뇌하며 탐구하고 자신을 연마한 결과라고 여긴다. 그의 세상을 정확하게 읽는 통찰력은 마침내 새로운 문명의 도래에 따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에 이르며, 문명의 전환에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운영원리로서 자율·상생·순환·조정의 신진보 이념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공동체 민주주의, 민주시장주의, 비폭력주의, 복지국가주의로 자립국가, 복지국가, 환경국가, 문화국가, 도덕국가를 새로 세울 것을 국가발전목표로 정립한다.

이러한 그의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경세철학과 이념은 매우 고고하다. 필자는 장기표 선생을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는 우리의 난장판에 다름 아닌 정치풍토에서 정치가로서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주의자야말로 후천개벽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상주의자만이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에서 잘 배우고 있다.

장기표 선생은 도덕주의자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그의 모습 또한 우리의 정치현실에 적응하기 힘든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바로 부도덕한 정치를 바로잡아야 나라의 앞날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기대를 걸게 된다.

그와 만나거나 그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장기표라는 사람이 구도자처럼 보인다. 자연과 인생을 담담한 마음으로 관조하고, 불의와 거짓에 대해 분노하면서도 인생과 세계에 대해 낙관하는 태도, 그러면서 섭리에 따른 삶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그런 면모가 약여하다. 투사답지 않게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경지는 쉽게 도달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얼마나 숙고하는 사람인가도 통상적인 투사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그는 언어란 역사적이고도 사회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의미가 변질된 용어를 쓰기보다 국민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아 이 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해방, 노동해방이란 용어 대신에 참된 자유, 참된 평화, 참된 복지, 참된 행복의 실현 또는 기쁨을 얻는 노동 등으로 표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배려는 장기표 선생이 용어 한마디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의미의 전달이 정확하게 될 수 있게 고심하고 숙고했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이다.

필자는 장기표 선생의 [구국선언]을 읽고 이 시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경세가를 만난 기쁨에 젖을 수 있었다. 때로는 불을 토하는 웅변 같고, 때로는 초등학교 교사의 자상한 설명 같은 이상의 펼침과 열정의 토로는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출처][국가파산을 막을 희망의 메시지 구국선언] | [유재천] 문명전환기의 새로운 경세철학-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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