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더니 얼굴의 왼쪽 근육이 땅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잠을 잘못 잤나 싶었다. 머리의 절반인 왼쪽이 쥐가 난 듯 근육이 경직된 느낌이 지속됐다.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는데 얼굴이 좀 이상했다. 코와 윗입술 사이에 있는 인중이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입술 주변의 수염을 깎는데 입술의 오른쪽 부분과 왼쪽 부분의 균형이 맞지 않았다. 입을 벌리면 왼쪽은 거의 움직임이 없고, 오른쪽은 과잉으로 벌여졌다. 입을 움직이면 오른쪽 부분만 기능을 했다.
꿈에서는 이보다 더한 상황도 겪었던지라 마치 꿈이 아닌가 싶었다. 나에게 이런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곧 풀리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상황은 점심 때까지 이어졌다. 사무실 사람들과 식사는 하던 중 맞은편에 앉아있던 후배가 "말소리가 이상하게 들린다"고 했다. 내가 하는 말이 평소에 듣던 목소리가 아니라고 했다. 한쪽 근육이 경직돼 발음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이다. 선배 한 분은 "인중이 틀어져 있다"며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점식 식사 후 신분증을 챙겨 인근 병원에 갔다. 후배가 차로 태워주었다. 응급실로 바로 찾아갔다. 응급실 출입 관리 직원은 나를 향해 "왜 왔냐"고 물었다. "안면 근육이 경직돼서 왔다"고 했더니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나와서 혈압 검사기로 나의 혈압을 체크하고 몇 가지 시험을 했다. "'이~' 해 보세요" "양쪽 눈을 감아보세요" "이마에 주름이 지게 해보세요" 등의 요구를 했다. 간호사는 나의 얼굴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인지한 듯, "응급실 안으로 따라오라"라고 했다.
나에게 환자용 간이 침대가 배정됐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어라고 했다. 끈 매는 쪽이 앞으로 오게 하여 환자복을 입으려고 하자 본 간호사가 와서 "반대로 입었다"면서 "끈 매는 쪽이 등 쪽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간호사가 등 뒤로 간 환자복의 끈을 매주었다. 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참, 이런 일이 나에게 발생하다니,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얼굴 근육이 경직돼 한나절 이상 풀리지 않으니 말이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이 침대에 누워있는데, 간호사들과 응급실 담당 의사가 다녀갔다. 이들은 체크 리스트를 들고 와서 "눈 감아보세요" "'이~'라고 말해보세요" "이마에 주름을 잡아보세요"라고 판에 박힌 듯 3가지 질문을 했다. 나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몇 번 더 눈을 감고, '이;~"라고 말을 하고 이마에 주름을 잡는 시늉을 했다. 나는 거울이 없기 때문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와서 맨 먼저 왼쪽 팔둑에 채혈 주사를 놨다. "피가 잘 안 나온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간이 좀 걸려 "다 됐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채혈한 주삿바늘 자리에 수액 주사를 놨다. 수액 주삿바늘을 낀 채로 뇌와 흉부의 이상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방사선실로 이동해 CT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환자용 침대로 되돌아왔다. 천장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흰 가운을 입은 젊은 남성이 심전도 검사를 하러 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측정기를 가슴, 손목, 발목에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응급실 위 모 의사가 "이비인후과에 예약을 해 놨다"며 "거기 가서 검사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남성 간호조무사가 휠체어를 가져와서 나를 태우고 엘리베이트를 이용해 이비인후과가 있는 3층으로 이동했다.
이비인후과 의사의 진료를 받으면서 나는 궁금한 사항을 물어볼 수 있었다. 이 질병의 이름이 무엇인지, 원인은 무엇인지, 지난번 못에 찔린 일이 있는데 파상풍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회복하려면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혹시 회복되지 못하고 이대로 굳어진 채로 사는 경우도 있는지 등이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질병의 이름을 특정하기 힘들고, 원인은 몸에 면역력이 약해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인데, 바이러스의 이름은 특정하기 힘들다. 감기에 비유하자면 병명을 감기라고 하지만 바이러스 종류는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못에 찔린 것과 파상풍 주사는 이번 안면 경직과는 무관하다.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는 길면 3개월까지 간다. 빠르면 한 달 내에 낫는 경우도 있다. 치료를 해도 낫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약 10~30% 정도는 완전히 낫지 않는다. 잠잘 때 왼쪽 눈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각막이 손상될 수 있으므로 테이프를 붙이고 자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응급실에서는 약을 3일치 밖에 처방하지 못하므로 3일 이내 이비인후과에 진료를 받아 10일 치 이상 약을 받을 수 있도록 진료예약을 하라"고 권유했다. 나는 주말을 피해 내일(금요일)이나 모레(토요일) 진료를 받겠다고 했다. 의사는 병원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들의 시간표를 보고 다음날(금) 오전 진료 예약을 해주었다. 따라서 응급실에서 처방한 약은 1일 치만 나왔다.
이비인후과에서 약 처방을 받고 응급실로 돌아왔다. 응급실 담당 간호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알려왔다. 응급실 수납 창구에서 진료비, 약값 등을 신용카드로 지불하고 응급실 전용 약국에서 조제약을 받았다. 진료 예약을 다음날로 잡는 바람에 약은 1일치만 나왔다. 병원을 나오면서 진료비 영수증을 살펴봤다. 총진료비는 47만 1097원이 나왔으나, 의료보험이 적용돼 개인부담금은 14만 70원이었다. 14만 70원 중에는 급여 중 약품비 1만 617원, 비급여중 치료재료대 1만 500원은 전액 환자본인부담금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어쨌든 의료보험으로 개인 부담금이 크게 줄은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보험은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세계 최고의 복지시스템임을 절감했다. 평소 건강관리를 하더라도 일생을 살면서 질병이나 상해를 피할 수 없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이웃, 전 국민이 의료보험 서비스를 세계 최상의 품질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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