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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은 '제갈대중'.. 제갈량의 후손?[김대중 출생의 비밀]

polplaza 2024. 5. 22.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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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1924.1.6~2009.8.18)은 삼국지에서 유비의 군사로 신출귀몰한 지략을 펼쳤던 제갈량(諸葛亮)의 후손인가? 제갈량의 제갈은 성이고, 량은 이름이다. 제갈량을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공명은 자이다. 김 전 대통령은 공식 기록에 김해 김씨의 후손이다. 그런데 윤 씨에 이어 제갈량의 후손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런 얘기는 어디서 왜 나온 것일까.

한국에는 제갈공명의 후손으로 3개 성이 있다고 한다. 제갈, 제, 갈 등 3개 성이 제갈에서 각각 분성(分姓)되었다는 것이다. 

올해 83세인 제 모씨는 2025년 5월 22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제가는 제갈공명의 후손"이라며 "우리나라에 제가와 제갈 씨, 갈 씨 등 3개 성은 모두 제갈에서 분성된 것이며, 이중 가장 큰집이 제가이고, 다음이 제갈 씨, 그리고 갈 씨를 가장 작은집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40년 전 쯤, 문중에서 족보 작업을 하는데 하의도에 산다는 종친이 찾아와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본래 성이 김 씨가 아니고 제갈 씨라고 얘기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며 "그런 이야기를 못 들었느냐"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김해 김 씨가 아니라는 얘기는 공공연히 들은 적이 있었지만, 성이 제갈 씨라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필자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인터넷에 검색해보기로 했다. 우선 국내 주요 언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문제가 보도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1980년 5월 9일자 경향신문(2면)에 {金山祭(금산제)가 열린 경주시 탑동 김유신 장군묘소 주변에는 '김대중은 가짜 김해 김씨이며 본명은 윤대중이다'라고 김씨를 비방하는 정체 불명의 벽보들이 나붙어 눈길을 끌었다.}라는 가십(gossip) 기사가 있었다. 다음날인 5월 10일자 조선일보(2면)에도 {대제가 열리는 흥무왕릉 앞에는 '김대중' 아닌 '윤대중'이라는 플래카드가 나걸려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케 했다}라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 중 흥무왕릉은 김유신 장군묘를 말한다. 1980년 9월 11일자 경향신문에는 '공판과정서 드러난 출생서 친북괴활동까지'라는 박스(BOX) 기사에서 김 전 대통령의 출생과 호적관계를 언급하고 있었다.

(1980년 5월 10일자 조선일보 2면)


그로부터 7년 후, 연말에 대선이 치러진 1987년 11월 3일자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3개 신문에 전날 김해 김수로왕릉 앞에서 10여명의 청년들이 "김대중이 아니라 윤대중이 왔다". "저 사람이 김해 김씨 맞느냐"라고 이곳을 방문한 당시 김대중 대선후보 측에 시비를 걸었다는 가십 기사가 있었다. 

국내 신문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해 '제갈' 성씨를 찾을 수 없었다. 정체불명의 플래카드와 벽보 등에 나타난 '윤대중'이라는 '윤 씨' 성만 거론됐다. 그렇다면 '제갈'이라는 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제갈 성과 관련된 기사는 월간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월간조선은 2005년 1월 인터넷에 게시된 {生前의 유일한 인터뷰 -「金大中 출생 비밀 10년 추적자」孫昌植 씨 죽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손창식(작고) 씨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생의 비밀을 추적하게 된 배경과 과정 등을 생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이 기사를 요약하면, 김 전 대통령의 친모인 장노금(1893~1971. 후에 장수금으로 개명)은 생전 3명의 남자와 결혼 또는 동거생활을 했다. 첫 남편은 제갈성조이고, 2번째 남편은 사실혼 관계로 동거한 윤 모씨이고, 3번째 남편은 김운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김해 김씨 성은 장노금의 마지막 남자 김운식의 성을 따른 것이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의 출생 시기와 그의 어머니가 세 남자와 결혼 또는 동거 시기, 김 전 대통령과 그의 어머니 장노금의 고향 이웃 증언 등을 종합해보면, 제갈 씨의 후손이라는 것이 손 씨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 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한길연구회'라는 단체가 기관지 한길소식지에 '김대중 씨는 김해 김 씨가 아니고 제갈 씨다'라고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이다. 이 건으로 한길연구회 간사장이었던 손창식 씨 등 관련자들은 김대중 후보 측으로부터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당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2008년 10월, 또 한번 김 전 대통령의 성씨 문제가 거론됐다.

'김대중, 그는 金大中인가? 尹大中인가? 諸葛(제갈)大中인가?'라는 글이다. 경향신문 기자 출신의 재미언론인 손충무(작고) 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인사이더월드'에 쓴 칼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8년 8월 18일 사망한 후, 그의 묘비명에 새겨진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후광 (後廣) 김대중 선생은 본관이 金海 이시다. 아버지는 김운식 공이고 어머니는 장수금 여사이며 1924년 1월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 에서 태어나셨다'라는 글 가운데 '아버지는 김운식 공'이라는 글이 거짓말이라는 지적이었다. 손 씨의 이 글은 인터넷의 발달로 여기저기에 '펌글' 형태로 볼 수 있었다.

손충무 씨는 이 글에서 "김대중은 자신을 만들어준 진짜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私生兒(사생아)이다. 지금 같으면 DNA 검사를 해보면 간단 하게 알 수 있는 일이지만"이라며 "아버지로 되어 있는 김운식은 김대중이 7살 때 자신의 호적에 첩의 아들로 이미 7년 전에 태어난 庶子로 올려 주어 학교를 다니도록 만들어 주고 먼 훗날 정치인으로 변신한 김대중의 호소로 본부인과 이혼하고 4일 후 김대중의 어머니와 바로 결혼 정식, 정부인으로 올려 김대중을 嫡子로 만들어 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김운식은 김 전 대통령의 호적을 만들어준 법률상 아버지일 뿐, 생물학적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손충무 씨의 칼럼은 월간조선이 보도한 손창식 씨 인터뷰 기사 내용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손충무 씨의 칼럼을 요약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어머니 장노도는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 18세 때인 1911년 옆 섬마을에 사는 제갈성조에게 시집가서 딸 2명을 낳았다. 1920년 제갈성조가 사망하자 그의 형 제갈성복이 젊은 과부가 된 제수 씨와 비밀리에 육체관계를 가져 아이를 갖게 됐다. 제갈성복은 좁은 섬에서 소문이 날 수밖에 없자 제수 씨를 뻐리섬으로 이사를 보내 친구인 윤창언에게 중매를 서는 것처럼 하여 동거를 하게했다. 윤창언은 농악하던 사람으로 부인과 사별한 후였다. 윤창언과 동거한지 얼마 안돼 아들이 태어났는데 윤대만(또는 윤성만)으로 불렀다. 이 아이가 훗날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는 것이 여러 증언과 자료를 통해 취재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2년 후 장노금은 윤창언과 사이에 정상적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윤대의였다. 몇년 후, 윤창언이 사망하자 장노도는 홀로 2녀 2남을 키워야 하는 생활고를 겪게 됐다. 이 때 시숙 제갈성복이 돈을 대서 뻐리섬 선창가에 주막집을 차려 주었다. 장노금은 그 주막집에서 하의도의 큰 부자였던 김운식과 눈이 맞아 동거를 했다. 윤대만이 7살이 되자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호적이 필요했다. 1924년 7월 7일 윤대만이 김대중(金大仲)으로 이름이 바뀌어 김운식의 서자(庶子)로 등재되었다(1988년 7월 18일 하의면장 장명우 발행 호적등본). 한자 金大仲은 다시 金大中으로 바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생의 비밀'을 취재했던 손창식 씨 인터뷰와 손충무 씨 칼럼을 종합해보면, 국내 일부 신문에서 가십 기사로 다룬 '김대중이 아니라 윤대중'이라는 이야기는 김 전 대통령이 어머니 장노금과 윤창언이 동거하던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손창식 씨 등은 장노금이 윤창언과 동거하기 전에 이미 배가 불러 임신한 상태였다는 여러 증언 등을 근거로 김 전 대통령이 제갈 씨의 후손이라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읽혀졌다.
 
특히 손충무 씨의 글에 따르면, 이같은 내용은 1997년 10월 한길소식(발행인 함윤식, 편집인 손창식) 제2호에 ' 김대중 출생 및 가계의 비밀을 밝힌다'는 주제로 수페이지 분량으로 실렸다. 이 기사를 손충무 씨가 자신이 발행자인 인사이드월드에 전재했다. 1997년 12월 17일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당선자는 그해 12월 19일 민원비서실장 오길록을 검찰에 보내 손충무, 함윤식, 손창식, 이도형 등 언론인, 출판인, 소설가 등 14명을 형사처벌하라는 고발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시기에서 재판을 받은 이들은 손충무 징역 2년, 함윤식 징역 1년 6개월, 이도형 집행유예 2년, 손창식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손창식 씨는 당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김대중이 아니라 윤대중이다'라는 이야기가 권력의 흑색선전일 것으로 단정하고 진실을 밝혀서 김 전 대통령의 누명을 벗기고 싶다며 여러 증인들을 만나고 자료를 수집했다. 생업을 뒤로 한채 취재를 거듭하면서, 결국은 '윤대중'을 넘어 '제갈대중'에 이르고 말았다. 김 전 대통령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나섰다가 김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마침내는 형사처벌까지 받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인터넷을 뒤져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출생 의혹을 다룬 글은 의외로 많았다. 대체로 손창식 씨가 주장한 '김해 김씨가 아니라 제갈 씨'라는 내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처음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와 유세 때 '뱀(박정희 후보가 뱀띠) 잡는 게 돼지'라며 '돼지띠(1923년)'라고 밝혔는데, 돼지띠가 맞다고 증언했다는 글도 있었다. 재미 원로언론인 양준용 씨가 쓴 글은 좀 더 구체적이었다. 이 외에도 '유신공화국의 몰락: 박정희와 김영삼과 김대중'(이한두, 서울: 매산출판사, 1986), '金大中の挫折 : 摸索する韓國,(시바타 미노루(柴田穗, 1930-1992), 東京: サンケイ出版, 1981년) 등 관련서적이 제법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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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식 녹취록

손창식 녹취록 - 우남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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