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재야'로 불리던 장기표 선생이 별세한 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선생이 원장으로 있던 신문명정책연구원은 선생이 쓰던 책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책상을 보면, 선생이 평소에 책상 주변을 얼마나 말끔하게 사용하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선생은 생전에 사무실에 필요없거나 어수선하게 보이는 것들은 가차 없이 휴지통에 버렸다. 문서를 프린트를 하면, 필요한 부수만 뽑아서 사용했다. 회의 자료도 회의가 끝나면 보관하지 않고 버렸다. 지인이 보낸 책은 집에 가져가서 읽거나 사무실 책장에 보관했다. 책상에는 꼭 필요한 책 몇 권만 챙겨두었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선생의 책상을 살펴봤다. 컵 1개와 연필통 1개, 쓰다 남은 명함 2통, 딱풀 1개, 두루마리 휴지 1개, 노트북 1개, 검은 뿔테 안경 1개, 그리고 책 10권 정도가 꽂혀 있었다. 이 중 2통의 명함은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와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으로 각각 활동할 때 사용한 것들이었다. 모두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선생은 항상 이렇게 책상을 사용했다. 만일 암 투병을 하지 않고 매일 사무실에 나왔다면, 노트북 옆에 있는 종이 인쇄물들은 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자료 같은 것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암 진단을 받은 후, 3~4차례 사무실에 나왔다 사람들을 만나고 가면서, 책상을 더 이상 손보지 않아서 몇몇 것들은 그대로 남아있게 된 셈이다.
선생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 선생이 지인에게 보낸 등기 우편물이 반송돼왔다. 사무실의 누군가가 선생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선생 앞으로 온 책은 봉투를 뜯어 버리고 책만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곳에 선생을 위해 마스크를 가져와서 올려놓기도 했다. 선생이 사무실에 나오지 못한 기간에 몇 가지 물건이 선생의 책상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선생은 사무실에서 주로 노트북을 사용했다. 당신이 쓴 글을 메일로 보내고, 다른 사람의 글을 메일로 받아 읽곤 했다. 가끔 프린트로 뽑아서 그 글을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나눠주기도 했다. 그러니 책상 위에 종이류를 쌓아놓을 이유가 없었다. 필요 없는 것들은 그때그때 버리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었다.
그런데 선생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서점에 가서 구해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전태일 평전'이었다.
선생은 어느날 책장을 살펴보면서 "사무실에 전태일 평전이 없네"라면서 "어디 갔지?"하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런 일이 있고서 얼마 후, "동네 서점에 갔는데 그 책을 안 파네. 이야~"라고 해서 "무슨 책을 사러 가셨는데요"라고 물어봤다. 선생은 "전태일 평전인데, 그거, 큰 서점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며칠 뒤, 마침내 전태일 평전을 사왔다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전태일 평전'은 선생이 떠난 뒤에도 책상 한쪽에 굳건히 꽂혀있었다. 전태일 열사와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선생이 남겨놓고 간 책상을 보면서, 아인슈타인이 남겨놓고 간 책상이 떠올랐다. 정리정돈이 잘 된 책상과 마구 헝클어진 책상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개인 습관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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