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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작가, "데모하던 그 언니는" 운동권 성 착취 고발

polplaza 2021. 10. 24.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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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작가이면서 남서울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박선경 씨가 1980년대 운동권에 빠져 불행한 삶을 살았던 지인 언니를 소개하면서, 당시 운동권 남성들의 성유린과 성착취 문제를 고발해 파문이 예상된다.

박 씨는 10월 23일 '데모하던 그 언니는'라는 제목의 글에서 "동네 교회에 예쁜 여대생이 있었다. 은지 언니는 신촌에 있는 모 여대에 재학 중이었다. 교회는 물론 동네 남학생들이 거의 올리비아 하세 닮은 언니를 좋아했다. 언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전두환 시절 과외를 폐지했음에도 속칭 ‘몰래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 썼다. 신앙심이 깊었고 얼굴보다 마음이 더 고운 사람이었다"며 "언니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운동권 학생들과 몰려다니며 사회주의 사상에 빠졌을 때부터였다"고 '은지 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 씨는 "언니 몸에서 하루가 멀다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났다. ‘군부독재 전두환 물러가라’고 쓰인 머리띠가 바지주머니에 있었고 가방 안엔 ‘마르크스 자본론’, ‘경마장 가는 길’(기억나는 건 두 책 뿐)이 들어있었다"면서 "사복 경찰에 쫓긴다 해서 내 친구 집으로 피신시켜준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 씨는 "어느 날 학교를 그만 두었다. 교회도 나오지 않았다. 언니 친구 얘기론 임신해서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임신했다는 얘기를 들은 지 석 달이 돼서야 교회에 나온 언니를 보게 되었다. 얼굴은 반쪽이었고 배는 홀쭉했다. ‘임신한 게 아니었네...’ 언니는 교회에 나온 지 서너 달 만에 다시 사라졌다"고 했다. 그 후 "노동현장에 위장 취업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번에도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후, 언니를 보지 못했다. 한참 뒤에 들은 소문은 또 임신이었다. 얼굴도, 배부른 걸 본 적도 없이 임신 소식만 세 번 들었다"고 했다.

박 씨는 "언니는 같은 교회(동네 교회 아닌) 다니는 성가대 운동권 선배랑 결혼했다. 결혼식장에서 본 언니 얼굴은 예전의 올리비아 하세를 닮은 그 모습이 아니었다"며 "결혼 후 언니는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이를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은지 언니가 이혼했다는 소식은 한참 후에 (들었다)"고 했다. 언니가 이혼을 요구했다면서, "녀평등, 여성인권 외치던 남편은 지나치게 가부장적이었고 언니의 과거를 들먹이며 폭력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학생 시절 임신을 세 번이나 한 건 모두 사실이었다"고 박 씨는 전했다.

박 씨는 언니의 불행을 전하면서, "운동권은 ‘사상이념 의식화 교육’시 성적 수치심을 장애물로 규정하고 여성 동지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교육했다"며 "말이 ‘성적자기결정권’이지 남자들의 성 유린, 성 유희, 성 착취, 무상섹스하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이었다"고 비판했다.

박 씨는 또 "공산주의 질서에서 성적타락이나 혼란, 순결 따위는 개인적 가치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며 "성은, 여성의 몸뚱이는 공평하게 분배하고 나눠야 할 영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예쁘고 착했던 언니가 불행하게 살다간 것은 근원적으로 80년대 운동권 남학생들의 '성 유린과 성 착취, 무상섹스를 위한 허울뿐인 성적자기결정권' 교육의 피해를 당한 결과라는 것이다.

(박선경 씨/ 사진: 페이스북 캡처)


<데모하던 그 언니는>

동네 교회에 예쁜 여대생이 있었다. 은지언니는 신촌에 있는 모 여대에 재학 중이었다. 교회는 물론 동네 남학생들이 거의 올리비아 하세 닮은 은지언니를 좋아했다. 은지언니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전두환 시절 과외를 폐지했음에도 속칭 ‘몰래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 썼다. 신앙심이 깊었고 얼굴보다 마음이 더 고운 사람이었다. 언니 얼굴이 잿빛으로 변하기 시작한 건, 그녀가 운동권 학생들과 몰려다니며 사회주의 사상에 빠졌을 때부터였다. 언니는 운동권 남학생들과 MT 가는 건 매번 망설였다.

운동권은 ‘사상이념 의식화 교육’시 성적 수치심을 장애물로 규정하고 여성 동지들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교육했다. 말이 ‘성적자기결정권’이지 남자들의 성 유린, 성 유희, 성 착취, 무상섹스하기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이었던 게다.

은지언니 몸에서 하루가 멀다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났다. ‘군부독재 전두환 물러가라’고 쓰인 머리띠가 바지주머니에 있었고 가방 안엔 ‘마르크스 자본론’, ‘경마장 가는 길’(기억나는 건 두 책 뿐)이 들어있었다. 사복 경찰에 쫓긴다 해서 내 친구 집으로 피신시켜준 적도 있었다. 언니를 친구 집에 두고 나서는데 ‘집안이 어려우니 열심히 공부해 버젓한 직장을 가져야 하는데...장녀인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지...선경아 너는 데모하지 마라....’ 혼잣말을 탄식하듯 내뱉었다.

그렇게 열심히 데모하던 언니가 어느 날 학교를 그만 두었다. 교회도 나오지 않았다. 은지언니 친구 얘기론 임신해서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임신했다는 얘기를 들은 지 석 달이 돼서야 교회에 나온 언니를 보게 되었다. 얼굴은 반쪽이었고 배는 홀쭉했다. ‘임신한 게 아니었네...’ 언니는 교회에 나온 지 서너 달 만에 다시 사라졌다. 노동현장에 위장 취업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번에도 임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후, 언니를 보지 못했다. 한참 뒤에 들은 소문은 또 임신이었다. 얼굴도, 배부른 걸 본 적도 없이 임신 소식만 세 번 들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언니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언니는 회개했을까. 기독교에서 집단 혼숙, 간음, 낙태가 죄인 줄 알았을 텐데.

공산주의 질서에서 성적타락이나 혼란, 순결 따위는 개인적 가치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성은, 여성의 몸뚱이는 공평하게 분배하고 나눠야 할 영역일 뿐이다.

일 년 후였을까 은지 언니가 결혼한다고 연락이 왔다. 같은 교회(동네 교회 아닌) 다니는 성가대 운동권 선배랑 결혼했다. 결혼식장에서 본 언니 얼굴은 예전의 올리비아 하세를 닮은 그 모습이 아니었다. 지쳐있기도 하고 표독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묘한 모습이었다. 결혼 후 은지언니는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이를 낳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다.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은지언니가 이혼했다는 소식은 한참 후에, 정말 그 언니 존재조차 잊고 있을 무렵에 들려왔다. 남녀평등, 여성인권 외치던 남편은 지나치게 가부장적이었고 언니의 과거를 들먹이며 폭력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학생 시절 임신을 세 번이나 한 건 모두 사실이었다.

언니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묵살 당했고 손목을 긋는 자살 소동을 벌인 후에야 이혼에 동의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볼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이혼을 허락했다.

은지언니는 이혼 후 혼자 살다 병을 얻어 죽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전두환이 없었다면 행복했을까. 교회에 안 다녔다면, 사회주의 세상이 됐으면 행복했을까. 아니면 지독한 가난이 문제였을까, 아름다운 외모가 문제였을까. 요즘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자되니 소설 같은 은지언니의 부박(浮薄)한 삶이 떠올랐다. 누구, 누구처럼 잘 버텨서 시장자리, 장관자리 하나쯤은 꿰차지 그랬어. 견뎠으면... 전두환 때보다 지금 삶이 나았을 텐데 말이지.

(박선경 씨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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