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창업·CEO

뉘신지 모르겠으나(3)

polplaza 2021. 2. 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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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나에게 초청장을 보내왔다.

미국 백악관 만찬에 참석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이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니까 세상 물정을 좀 아는 나는 당연히 그가 미국 대통령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살고 있는 소시민인 나를 어떻게 알고 초청을 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궁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왜 나를 초청한 것일까.

어떻게 나를 알고 우리 집 주소로 초청장을 보낸 것일까.

(사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백악관 동영상 캡처)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려면 태평양을 건너가야 한다. 어려운 형편에 비행기표를 구해서 가야 할지 갑자기 고민이 생겼다. 동명이인에게 보낸 것이 잘못 부쳐져 나에게 온 것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싶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다른 사람을 초청한 것이라면 괜히 갔다가 백악관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만 당하고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초청장에 비행기 예매표가 들어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친절하게 비행기 표까지 예매해서 보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나를 초청한 것이 진짜일까. 혹여 동명이인인 다른 사람이 아닐까. 내 이름과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많을 텐데 말이다.

그래, 좋은 방법이 있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가서 인물검색을 해보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초청할만한 자격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내 이름을 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내 이름이 주루룩 튀어나왔다.대기업 임원, 고위공무원, 국회의원, 언론사 간부 등등. 어휴, 이렇게 하다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같은 이름이 너무 많이 나와 누가 누군지 구별하는 것 자체로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찾아보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낸 주소지를 구글에 입력해서 검색해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집 주소가 떴다. 미국 대통령 비서실에서 설마 주소를 잘못 적어 보냈을 리는 만무할 것 같았다. 맞아, 나한테 초청장을 보낸 것일 거야. 이렇게 생각을 굳히기로 했다,

마침내 백악관 만찬 참석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가르며 워싱턴에 도착했다.

행사 시간에 맞춰 백악관을 찾아갔다.

만찬장 입구에는 나를 위한 비표가 한글과 영문으로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비표를 달고 만찬장 안을 기웃거리며 조심조심 들어섰다. 난생처음 백악관의 만찬장으로 들어간 나는 큰 체구의 낯선 사람들과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기가 죽기 시작했다.

안쪽에서 세계의 정상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자마자 내 이름을 크게 부르며 오른손으로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 내 어깨에 오른손을 올리면서 친구야, 어서 오시게.” 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나를 헤드테이블로 데리고 가서 자신의 왼쪽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나는 구석자리를 원하면서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호의를 자꾸 거부하는 듯 하자 인상을 찌푸렸다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헤드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앉고 보니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곧이어 나에게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이 분은 영국 수상이고, 이 분은 러시아 대통령, 이 분은 프랑스 수상, 이 분은 캐나다 수상, 이 분은 중국 주석 등등이라며 나에게 인사를 하게 했다. 뒤늦게 안 일이었지만, 이 만찬은 오바마 대통령이 주재하는, 세계의 주요 국가 대통령들이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분은 한국에서 온 나의 친구라며 앞으로 서로 친하게 지내라”고 나를 소개했다. 내 등에서 진땀이 흘렸다. 이런 자리에는 내가 올 곳이 아닌데 하고 후회가 되었다.

잠시 후, 만찬이 시작되었다. 맛있는 음식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각국의 원수들이 참석한 자리인지라, 생전 보지도 먹지도 못해본 음식들이 시각과 후각을 자극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맛있게 먹을 수가 없었다. 이마와 목 줄기에서 저절로 땀이 흘러내렸다. 눈을 들지 못하고 머리를 숙인 채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어 고개를 살짝 들어보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불만스러운 눈짓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을 개념 없이 먹고 있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언제 어디서든 주변 환경에 주눅 들지 말고 자신 있게 행동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있었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의미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래서 만찬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오바마 대통령의 눈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서서히 눈을 떠보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안 보이고 벽시계가 보였다.

새벽 2 5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뉘신지 모르겠으나 절대 포기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오늘도 그분에게 절을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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