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고문관 이등병의 위험한 실험 정신

polplaza 2021. 2. 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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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고문관 끼가 있는 신병이 훈련소를 퇴소하자마자 최전방으로 배치됐다. 그는 틈날 때마다 상념에 잠겨 있거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 공상가이거나 허무주의자 같았다. 이런 녀석은 뺑뺑이를 심하게 돌려야 정신을 차릴 놈이었다.

경계 근무를 선지 1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화창한 봄 날씨가 그저 온몸을 나른하게 만드는 어느 날이었다. 경계초소로 근무 나간 이등병은 몇 시간짜리 근무를 서자니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훤한 대낮에 간첩이 넘어올 리 만무하고, 그저 상념만 깊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이등병은 심심한 터라 총을 만지작거렸다. 쇠로 만든 이 물건이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총의 위력은 얼마나 될까. 이렇게 작은 탄환이 어떻게 사람을 죽인단 말일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한번 쏘아볼까. 그는 문득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총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등병은 방아쇠에 손가락을 넣어보았다. 안전장치가 잠겨있어서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한동안 그 상태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같이 근무 나온 병장 선임병이 잠시 볼 일을 보러 초소 밖으로 나간 사이, 이등병은 안전장치를 풀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한번 당겨보기로 했다. 소심한 이 이등병은 자신이 직접 실험 대상이 되기로 했다.

그는 총구를 전방으로 향하게 했다. 자신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 끝을 총구에 갖다 댔다. 이 부분은 훗날 보안대 조사 때 논란의 불씨가 됐다. 하필이면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느냐는 것이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군 복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갔던 선임병이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기척이 났다. 이등병은 급히 오른손 검지 손가락 끝을 총구의 끝에 살짝 붙이고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땅~.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의 3분의 1 이 사라지고 없었다. 피가 줄줄 흘렀다. 아무리 고문관이라지만 살상 무기를 가지고 실험하는 녀석은 바보 아니면 저능아 아닐까. 선임병은 즉시 소초 상황실에 보고했다. 이등병이 사고를 쳤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실은 중대와 대대, 연대를 통해 사단에까지 보고됐다. 이등병이 군생활을 비관해 자해 사고를 벌였다는 내용이었다.

어찌 됐든 총상을 입은 이등병은 일단 군 병원으로 후송됐다. 보안대 수사관들이 소초의 선임병들에 대해 조사를 나왔다. 이등병의 내무반 생활에 문제가 없는지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등병의 정신상태가 문제였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으로 부대 정신교육이 강화됐다.

상급부대에서는 이등병 개인이 자초한 문제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런데 골칫거리가 하나 남았다. 사고를 친 이등병의 검지 손가락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의가사 전역을 시킬 것인지, 복무를 계속 시킬 것인지가 논란이 됐다. 조사관들은 이등병이 의가사 전역을 하기 위해 고의로 검지 손가락을 없애려고 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저런 녀석을 의가사 전역시키면 모방범죄가 잇따를 개연성이 크므로 복무기간을 모두 채우도록 해야 한다는 게 최종 결론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등병은 검지 손가락이 없는 상태에서 남은 군생활을 다하게 됐다.

6개월 후, 페바 지역의 대대 연병장에서 이상한 장면이 목격됐다. 축구를 하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한쪽 팔을 배에 계속 붙이고 뛰는 선수가 있었다. 오른팔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선수였다.

내막을 모르는, 새로 부임한 부대장이 연병장 밖에서 응원하는 병사들에게 물었다. "저 병사는 왜 저렇게 불안하게 공을 차느냐?"라고.

자초지종을 잘 아는 병사들이 대답했다.
"저 친구는 배꼽에 검지 손가락을 붙이는 수술을 했습니다. 전방에서 검지 손가락을 다쳤는데, 잘린 손가락을 배꼽에 넣어두면 손가락이 자란다고 합니다."

부대장은 "뭐야? 그런 게 있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잘린 손가락을 배꼽에 연결해놓으면 손가락이 자란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거짓말할 리 만무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오른팔을 배에 붙이고 뛰었던 선수는 바로 총을 실험한다면서 자신의 검지 손가락에 대고 총을 쐈던 그 이등병이었다. 그 사이에 진급을 해서 일병이 됐다. 

 

※고문관: 군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를 가리키는 군대 속어.

(출처: 행군의 아침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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