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열사, 의사, 투사의 차이점

polplaza 2021. 11. 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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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희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운 인물의 이름 뒤에 붙이는 용어 가운데 열사(烈士), 투사(鬪士), 의사(義士)가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열사는 대한제국의 이준 열사를 꼽을 수 있다. 의사는 안중근 의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투사는 특별히 역사적 인물에 잘 사용되지 않는다. 주로 존경의 의미를 담은 '선생'이란 칭호를 붙인다. 도산 안창호 선생, 백범 김구 선생 등으로 부른다.

이처럼 호칭을 구분하여 사용하는 이유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은 '열사(烈士)'에 대해 '나라를 위하여 절의를 굳게 지키며, 충성을 다하여 싸운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따라서 순국열사(殉國烈士)'는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사람', '민주열사(民主烈士)'는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장렬히 싸운 사람', '충신열사(忠臣烈士)'는 '충성을 다하는 신하와 절개가 높은 선비'라고 해석하고 있다.

'의사(義士)'에 대해서는 '의협심이 있고 절의를 지키는 사람'이라고 간략히 풀이하고 있다.

'투사(鬪士)에 대해서는 1)'싸움터나 경기장에서 싸우려고 나선 사람', 2)'정의로운 일을 위해 나서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이라고 2가지 뜻을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는 후자인 '정의로운 일을 위해 나서서 목숨을 바쳐 싸우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투사를 다룬다.

국어사전의 해석으로만 볼 때, 이준 열사는 이준 의사나 이준 투사로, 안중근 의사는 안중근 투사나 열사로 호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왜 이준 열사, 안중근 의사로 부르는 것일까. 이는 현실적으로, 용어의 쓰임에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열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사람'에게 붙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준 '열사' 같은 경우이다. 이준 열사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되어 을사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에 대한 열강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대한제국은 이미 일본의 보호국이므로 1국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고 회의 참석을 거부당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에서 순국했다. 소위 헤이그 밀사사건이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헤이그 공동묘지에 묻혔있던 그의 유해는 1963년 국내로 옮겨져 국민장으로 서울시 수유리에 안장됐다. 1964년 장충단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안중근 의사 동상/ 안중근 기념관)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적을 물리치고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 붙인다고 한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의사는 일제 강점기인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 의사는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 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제네바 협정에 따라 전쟁포로로 대우할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던 중 항소를 포기해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旅顺监狱)의 형장에서 처형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일제가 그의 시신을 몰래 매장하는 바람에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해 국내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서울 남산에 안중근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투사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에게 붙이고 있다. 애국투사, 독립운동가 또는 독립운동투사, 민주화운동가 또는 민주화운동투사 등으로 불려진다. 목숨을 버리거나 잃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하여 열사나 의사에 비해 투사의 기여도가 낮다고 과소 평가할 수 없다. 살아서 더 열심히 오랫동안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존경까지 받게 되면 투사보다는 '선생'이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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